[기후위기 대응과 에너지전환]

기후헌법소원 판결 기자회견
연말연시, 많은 시민들이 본의 아니게 헌법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12월 3일 계엄 이후, 오랜 시간 쌓아온 민주주의의 기초가 흔들리는 것을 목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헌법은 시민의 기본권과 국가의 보호 의무를 규정하는 최상위 규범입니다. 안전하고 인간다운 삶, 자유와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보장하는 보루이며, 이를 가능하게 하는 민주주의 시스템의 근간이기도 합니다.
기후운동도 헌법의 힘을 빌려야 하는 순간이 있었습니다. 기후위기는 현재를 살아가는 인류의 안전과 생명에 대한 가장 큰 위협이며, 이를 방지해야 할 국가는 그 책임을 방기하고 있습니다. 이에 녹색연합을 비롯한 시민사회단체는 2021년 10월, 123명의 청구인과 함께 헌법재판소를 찾았습니다. ‘탄소중립녹색성장기본법’(이하 탄소중립법)에 명시된 온실가스 감축 목표가 지구 온도 상승을 1.5도 이내로 막기에 부족하다는 이유에서입니다. 입법부와 행정부가 이를 외면한 상황에서, 최후의 방법으로 헌법소원을 제기한 것입니다. 2021년 시민기후소송을 포함해 2020년 청소년기후소송, 2022년 아기기후소송 등 총 네 건의 기후소송이 제기되었으며, 254명이 청구인으로 참여했습니다.
그러나 첫 소송이 제기된 이후 4년이 지나도록 답이 없었습니다. 그러다 2024년 4월 23일과 5월 21일, 두 차례의 공개변론이 열렸습니다. 이는 아시아 최초의 기후소송으로 국내외에서 큰 관심을 받았습니다. 104석의 대심판정 좌석은 가득 찼고, 변론 전 기자회견에도 언론의 취재 열기가 뜨거웠습니다. 공개변론에서 청구인 측은 “현재 정부의 기후정책이 국제적 과학적 기준에 부합하지 않으며, 이로 인해 현 세대와 미래 세대의 환경권, 생명권, 건강권, 행복추구권이 침해받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반면, 정부 측은 “한국의 산업구조상 현재 감축 목표도 충분하며, 기후위기로 인한 기본권 침해는 미래에 잠재적으로 나타날 수 있는 것에 불과하다”고 반박했습니다.
2024년 8월 29일, 마침내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나왔습니다. 세 가지 쟁점에 대한 결론은 엇갈렸습니다.
첫째, ‘2030년과 2050년 사이의 감축 목표가 없다’는 이유로 탄소중립법 제8조 1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판결이 내려졌습니다. 즉, 법적으로 명확한 중간 감축 목표가 설정되지 않아 장기적인 기후 대응의 연속성이 부족하다는 점이 인정된 것입니다.
둘째, 2030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 자체에 대한 위헌 여부는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이는 현재 정부가 설정한 2030년 목표가 법적으로 유지될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셋째, 제1차 국가탄소중립녹색성장기본계획의 부문별 연도별 감축 목표에 대한 위헌 결정은 정족수 미달로 기각되었습니다. 다만, 위헌 의견을 낸 재판관이 5명이었고, 한 명만 더 찬성했더라도 위헌 결정이 내려질 수 있었던 만큼, 이 사안이 중요한 쟁점으로 부각되었습니다. 이는 향후 기후정책의 세부 목표 설정 과정에서 더욱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신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 소송의 핵심은 단순한 감축 목표 수치가 아닙니다. 기후위기가 인권 문제이며, 국가는 기후위기 대응을 통해 기본권을 보호해야 한다는 점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기업의 이익과 경제 성장을 이유로 기후위기로 인한 인권 침해를 방치해 온 잘못을 바로잡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이번 판결은 유럽 이외 지역에서 최고법원이 기후소송에 대해 판결을 내린 첫 사례이며, 거리와 현장, 국회와 정부청사 앞, 그리고 법정에서 싸워온 기후운동의 결실이기도 합니다.
입법부와 행정부는 헌법불합치 판결에 따라 탄소중립법 개정과 후속 정책 마련에 나서야 합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기후위기를 온몸으로 겪고 있는 이들의 권리를 보호할 방안을 마련해야 합니다. 또한, 37년 전에 제정된 헌법은 오늘날의 기후위기에 대응하기에 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기후위기, 민주주의 위기, 불평등한 사회 구조를 넘어서기 위해 시민이 직접 참여하는 새로운 헌법 논의를 시작할 때입니다.
5월 21일 마지막 변론일, 청소년, 어린이, 시민 대표가 법정에서 진술했습니다. 저도 시민을 대표해 재판정에 섰고, 이런 이야기를 남겼습니다.
“기후위기는 많은 것을 앗아갑니다. 소중하지 않은 것은 잃어도 아프지 않습니다. 많은 이들이 이 기후소송을 지켜보는 이유는, 이 땅을 살아가는 평범한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이 그토록 소중하고 존엄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기후운동을 하는 이유는 사랑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 이 땅의 수많은 생명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위기의 순간에도 이 사랑을 지키고 키워 나가는 운동을 함께하고 싶습니다.
본부 기후에너지팀 황인철 팀장
◊ 활동가 한마디
이 사회의 지켜야 할 최저선을 무너뜨리는 이들을 목격하고 있습니다. 기후헌법소원 판결도 최저선을 확인했을 뿐입니다. 이제 ‘최선’을 만들어야 할 때입니다. 기후대응도, 민주주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