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에는 어릴 적 부모님과 함께, 그리고 수학여행으로 와본 적이 있다. 그러나 이번 녹색순례처럼 등산이나 여행이 아니고 설악산에 인접해 있는 지역들을 에둘러서 걸어 본 적은 없어서 항상 동해안과 강원도 지역에 관심이 있는 나로서는 이런 다른 여정으로 인해 이 지방에 대해 관광적인 측면이 아닌 어떤 새로운 것을 보고 알게 될지 궁금했다. 그리고 이러한 여정에 함께 하는 많은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지 호기심도 있었다.
나는 속초의 영랑호에서 출발하여 미시령을 넘어가 내설악을 둘러서 걸어 오색케이블카 예정지에 3박 4일에 걸쳐 도착하는 하반기 순례 일정에 참여했다. 첫날 오전 영랑호에는 햇살이 좋고 바람이 제법 불었는데, 영랑호가 바다가 만든 석호라는 점을 알았고 작은 소나무 군집에 꽉 차게 입주해서 쉬고 있는 귀여운 백로들도 보았다. 백로들의 그 작은 집이 산불로 타고 남은 집이라는 점, 지역 환경운동가들의 노력으로 벌채로부터 집이 남아있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왼편 창밖으로 웅장한 울산바위를 보며 버스를 타고 미시령을 넘어가 용대리 황태마을을 지나 용대자연휴양림으로 차도를 따라 걸어 올라갔다. 용대리에는 겨울에 명태를 걸어 말리는 빈 황태덕장이 많이 있었다. 그리고 아직 익지 않은 초록색 작은 열매들을 달고 있는 마가목 나무들이 순례 내내 차도의 가로수로 심겨 있는 것이 신기했다.
용대자연휴양림에서 하루를 묵고 다음 날 아침 인근 숲의 여러 가지 식물들에 대해 자세하게 배웠다. 샛노란 색으로 ‘저건 무슨 꽃이지?’하고 궁금하게 만드는 노란괴불주머니, 우산 모양의 우산나물, 신기하게도 흙도 없는 바위 틈새를 비집고 자라있는 작은 흰 꽃의 매화말발돌이 등은 이제 반갑게 봄의 산길에서 마주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날 백담마을에서 설악산생태탐방원까지 가는 길은 계속되는 차도와 개천에 드러난 흰 바위들, 밝은 색에서 어두운 색의 녹색으로 얼룩덜룩한 산이었다. 잎이 나온다는 4월 말의 설악산은 어떤 모습일까 궁금했었는데 침엽수의 색은 어둡고 활엽수의 색은 새로 나온 연두색으로 서로 모여 얼룩덜룩한 모습을 보니 상상보다 예뻐서 웃음이 나왔다. 생태탐방원에서 모두 모여 순례에 대한 소회를 나누고 그동안 촬영한 사진과 영상을 보는 시간이 있었다. 30명이 조금 넘는 사람들의 소회들에서 모두 조금씩 나와 비슷한 점을 순례에서 느꼈다는 점이 신기하고 좋았다.
마지막 날 오전에 오색케이블카 예정지에 도착했다. 가는 길에 가드레일 밖에서 달리고 있는 산양 한 마리를 봤다. 오색그린야드호텔 맞은편에 있는 작은 공터에서 북쪽 산등성이 사이로 조금 보이는 암벽까지 케이블카가 건설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우리는 ‘설악산을 그대로’라고 쓰인 대형 현수막들을 공터 바닥에 깔고 잠시 그곳에 고요하게 앉아 있었다. 그리고 나는 설악산의 조용함을 포기할 수 없다고 말했다.
글. 박지형(녹색연합 녹색순례 참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