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다니는 잘닦인 도로, 언젠가는 다 야생동물들의 길이었겠죠. 차타고 가다보면 로드킬 현장을 정말 많이 봐요. 그럼 동물들은 어떻게 되나요? 생태통로 등 도로건설에 있어서 동물의 편을 들어주는 법이 있는 지 궁금해요.
우리나라 자연환경보전법은 국가, 지자체는 개발사업을 시행하거나 사업시행의 인허가를 할 때 생태통로 설치 등을 통해서 야생생물의 이동 및 생태적 연속성이 단절되지 않도록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하고(제45조 제1항), 단절된 지역이 있다면 생태통로 설치를 하도록 조치해야 한다는 규정을 마련하고 있습니다(제2항). 그러나, 생태통로 이외의 로드킬 저감대책에 대해서는 법률로 규정되어 있지 않고, 이미 야생생물의 이동이 단절된 구간 등에 대한 개선에 대해서는 사실상 강제되는 수준의 규정은 아닙니다.
로드킬(Roadkill, 동물 찻길 사고)은 그리 생소한 단어가 아닙니다. 흔히 로드킬이라고 하면 떠올리게 되는 고속도로뿐만 아니라, 도심 한가운데에서도 차도를 다니다보면 로드킬 현장을 발견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운전자의 부주의도 사고의 원인이지만, 그보다도 도로 자체에 의해 동물들의 활동영역이 단절되기 때문에 일어나는, 예견된 재앙입니다. 인간의 편리하고 효율적인 통행을 위해 닦인 도로가 야생동물들의 입장에서는 그들의 이동을 방해하거나, 목숨을 위협할 수 있는 공간인 셈입니다.
로드킬이 발생하였을 때 위험한 것은 비단 야생동물들만이 아닙니다. 특히 빠른 속도로 운전을 하게 되는 고속도로에서는 순간의 사고가 운전자에게 위협이 됩니다. 그렇다보니 로드킬이 발생한 상황에서 운전자는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운전해 나가는 것이 최선이라고 교육하게 되기도 합니다. 인간이 만든 길 위에서 동물들은 그렇게 같은 생명 공동체가 아닌 장애물로 취급받으며 그들의 죽음은 외면되기에 십상입니다.
자연환경보전법
제45조(생태통로의 설치 등) ①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는 개발사업등을 시행하거나 인ㆍ허가등을 할 때 야생생물의 이동 및 생태적 연속성이 단절되지 아니하도록 생태통로 설치 등의 필요한 조치를 하거나 하게 하여야 한다.
②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는 야생생물의 이동 및 생태적 연속성이 단절된 지역을 조사ㆍ연구하여 생태통로가 필요한 지역에 대하여 생태통로 설치계획을 수립ㆍ시행하여야 한다. 이 경우 생태통로가 필요한 지역에 위치한 도로 및 철도 등의 관리주체에게 생태통로 설치를 요청할 수 있으며 요청을 받은 자는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생태통로를 설치하여야 한다.
로드킬의 예방대책으로 가장 널리 알려져있는 것은 생태통로입니다. 「자연환경보전법」은 조사에 따라 필요한 지역에 대하여 생태통로의 설치를 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또한, 환경부와 국토교통부가 공동으로 「동물 찻길 사고(로드킬) 조사 및 관리 지침」을 제정하여 국립생태원 등의 조사기관들이나 지자체로 하여금 로드킬에 대해 조사하여 특히 집중적으로 사고가 발생하는 구간에 대해서는 저감방안을 마련하게 하고 있기도 합니다.
동물 찻길 사고(로드킬) 조사 및 관리 지침
제13조(저감대책) ① 동물 찻길 사고 저감대책은 매 3년마다 수립하며, 다음 각 호의 사항이 포함되도록 한다.
1.동물 찻길 사고 발생 및 다발 구간 현황
2.기존에 설치되어 있는 유도울타리, 표지판 등 관련 시설의 현황
3.유도울타리 등 야생동물 도로침입 방지시설, 표지판 설치 및 도로전광판 홍보 등 동물 찻길 사고 다발 구간에서의 운전자 주의 안내 방안 등 동물 찻길 사고 저감방안
다만 위 관리 지침과 같은 경우에는 행정기관의 예규에 불과하여 내부적인 효력이 있을 뿐, 대외적인 구속력을 갖지 못하는 것이 한계입니다. 생태통로 설치가 법률로 마련되어 있는 것에 비해 그외의 로드킬 저감대책의 마련에 대해서는 관련 행정기관의 대응에 따라 그 시행 방향에서부터 시행 여부까지도 달라질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한계로 인해서 21대 국회에서는 자연환경보전법의 개정을 통해 생태통로에 더하여, 유도울타리나 주의표지판의 설치 등의 저감시설 설치를 하도록 하는 방안을 법률에 마련하고자 시도한 자연환경보전법 일부개정법률안이 발의되기도 하였습니다(의안번호 16012). 로드킬이 다발하는 일부 지역 중 저감대책이 시행된 지역에서는 로드킬이 줄어드는 효과도 있었다는 점에서 실제로 법률의 개정이 이루어진다면, 유의미한 수치의 변화가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새로운 법안이 발의되기도 하는 등, 로드킬에 대한 인식도 변하고, 이에 대한 대처방안이 모색되고 있으나 법률을 마련한다고 해서 모든 게 한순간에 바뀌는 건 아닐 겁니다. 지자체나 관계 기관의 조사가 미비하다면, 애초부터 저감대책이 필요한 곳으로 인식되지 않을 수도 있고, 철도나 도로의 관리주체에게 생태통로 설치를 요청할 수 있다고 되어있는 법률의 문언상, 생태통로조차 강제화되어 있는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고, 기타 저감대책의 마련이 법률에 명시되더라도 결국 국가와 지자체의 재량이 개입할 수 있는 셈입니다.
도로 개발 뿐만 아니라 무분별한 지역 개발은 다양한 방식으로 동물들의 서식지나 생활환경을 훼손하고 있습니다. 근본적으로는 이런 문제들이 해결되어야 합니다. 법은 사회의 인식을 규정하고 한계지어주기도 하지만 어느 측면에서는 가장 늦게 따라가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동물이 사람과 공존하여 함께 살아가는 동료라는 점을 인식해야 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로드킬 현장 대처 메뉴얼 사체를 발견했을 시, 한국도로공사(1588-2504)로 연락해주세요. 생명이 살아있을 시, 근처 야생동물 구조센터로 신고하세요.
글: 이수빈 전 녹색법률센터 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