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 채식 식단을 요구하고 싶어요

나날이 채식 인구가 늘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됩니다. 건강이나 종교의 이유로 채식하는 것을 넘어, 동물권에 대한 의식이나 지속 가능한 먹거리에 대한 고민, 육식이 기후변화에 미치는 악영향 등을 고려하여 채식을 삶의 방식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사람들이 더이상 낯설지 않습니다.

그러나 단체급식을 해야 하는 환경에서는 사정이 다릅니다. 학교와 같이 한 공간에서 모든 사람이 하나의 식단에 따라 음식을 제공 받게 되는 공간에서 채식은 여전히 자연스러운 일이 아닙니다. 비건을 지향하는 학생들은 먹을 수 없는, 음식으로 보이지 않는 것들을 매일 식판에 받아들어야만 합니다. 편식한다며 핀잔을 듣기는 일쑤이고, 식생활에 어려움을 느껴 학교를 떠나기도 합니다.

학교에서 채식선택권을 보장받기 위해 헌법재판소로 향한 학생들이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보장되어야 할 헌법상 개인의 건강권이나 환경권, 양심의 자유 등이 침해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헌법재판소 2020.5.26. 2020헌마543), 학교급식에 대한 사항을 규정하고 있는 <학교급식법>의 문제점을 확인하기 위함이었습니다(헌법재판소 2020.6.9. 2020헌마537). 학교급식의 식단을 작성하는 기본적인 기준에 있어서 채식인들의 선택권 보장을 위한 내용이 마련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학교급식법 시행규칙>은 학교급식 영양관리기준에 따라 식단작성을 할 때에 고려할 사항으로 ‘어육류’, ‘우유 및 유제품’ 등을 사용할 것은 명시하고 있으면서도 채식선택권에 관한 내용은 없다는 것입니다.

<학교급식법 시행규칙>

제5조(학교급식의 영양관리기준 등)
② 제1항의 기준에 따라 식단작성시 고려하여야 할 사항은 다음 각 호와 같다.
1. 전통 식문화(식문화)의 계승ㆍ발전을 고려할 것
2. 곡류 및 전분류, 채소류 및 과일류, 어육류 및 콩류, 우유 및 유제품 등 다양한 종류의 식품을 사용할 것
3. 염분ㆍ유지류ㆍ단순당류 또는 식품첨가물 등을 과다하게 사용하지 않을 것
4. 가급적 자연식품과 계절식품을 사용할 것
5. 다양한 조리방법을 활용할 것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헌법 해석상 공공급식에서 채식주의 식단을 선택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는 입법의무가 도출된다고 보기 어렵다는 점(2020헌마543), 학교급식의 식단작성은 학교장의 재량행위이므로, 학교급식에서의 채식선택권 부재를 기본권의 직접적인 침해로 보기는 어렵다는 점(2020헌마537)을 하나의 이유로 들어 청구를 전부 각하하였습니다.

위와 비슷한 취지의 국가인권위원회 진정에 대해 인권위는 급식에서의 채식선택권이 보장되어야 할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채식급식 도입을 위한 노력이 없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점에서 유보적인 입장을 밝혔습니다. 실제로 인천, 서울, 울산 등의 교육청에서는 채식급식을 도입 하려는 시도를 거듭하고 있습니다. 울산의 경우, 채식인 학생을 사전에 조사하여 채식을 선택할 수 있게 하고, 대체식을 제공하고 있으며, 이에 더해 환경 및 채식과 관련한 교육을 늘려나가고 있습니다. 서울에서는 채식선택제 시범학교를 운영하고, 채식 요리를 추가로 제공하는 자율 배식대(‘그린 바’)를 도입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불완전하지만, 우리의 식탁은 조금씩 변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여전히 공공급식에서의 채식에 대한 이해도는 부족합니다. 예컨대, 인천시교육청은 월 2회 이상 ‘채식급식의 날’을 지정하여 운영하고 있지만, 대부분 완전 채식으로 이루어지지 않으며, 이것만으로는 완전한 선택권이 보장된다고 할 수 없습니다.

앞서 헌법재판소의 결정에서도 살펴보았듯이, <학교급식법>은 급식 식단에 관한 계획 상당 부분을 각 학교장의 재량에 맡겨두고 있습니다. 법 규정에만 모든 것을 의존할 수는 없겠지만, 개인의 건강이나 신념, 환경에 미치는 영향 등을 폭넓게 고려한다면 급식 구성의 방향성과 내용을 학교장에게만 일임해둘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포르투갈은 공공기관의 식당 시설에서 채식 메뉴 구비를 의무화하는 법률을 제정하여 학교급식의 채식선택권을 보장하고 있습니다. 삶의 본질적인 자리라고 할 수 있는 식탁에서의 선택권을 보장하는 일은 다양성이 담보되는 사회로의 한걸음이 될 것입니다. 헌법재판소와 국가인권위원회의 결정에 아쉬움이 남는 이유입니다.

참고자료
1. 2020년 공공급식 채식선택권 헌법소원 기자회견
2. 울산 교육 현장의 채식바람
3. 해외의 공공급식 채식선택권 현황

글: 이수빈 전 녹색법률센터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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