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권리’라는 표현 자체는 생소할 수 있지만, 이와 관련한 소송 이야기는 익히 들어봤을 법합니다. 2003년 천성산 도롱뇽 소송이나 2018년 설악산 산양 소송이 대표적입니다. 각각의 사례에서 도룡뇽은 터널 공사와 관련한 피해의 당사자로서 소송을 제기하였고, 산양은 설악산 케이블카 설치가 생존의 큰 위협이라는 점을 들어 소송을 제기하였습니다.
이렇듯 동물이 소송의 당사자가 되는 일은 한국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특이한 사건은 아닙니다. 해외에서는 동물뿐만 아니라, 강과 같은 기타 자연물이 소송의 당사자가 되어 그 권리를 요구한 사례도 있습니다. 2017년, 뉴질랜드의 왕가누이 강은 인간과 동등한 법적 권리와 책임이 부과된 자연물이 되었고, 에콰도르는 자연의 권리를 헌법에 명시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러한 사례들은 모두 자연 그 자체에 법적 권리를 인정할 수 있을지에 대한 질문을 우리에게 던집니다.
다시 우리나라의 사례로 돌아와 보겠습니다. 한국 법정은 산양이 소송의 당사자가 될 수 있다고 인정했을까요? 2019년 초, 서울행정법원은 산양 28마리가 원고로 낸 국가지정문화재 현상변경허가 처분 취소소송에서 그 청구를 각하하였습니다. 야생동물이 소송의 당사자가 될 수 있다는, 당사자능력을 인정하는 법령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실상 현행법령이 바뀌지 않으면, 앞으로 유사한 소송이 또 한 번 진행된다고 하여도 판례가 바뀌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왜 우리는 자연의 법적 권리를 보장해주어야 하는지, 어떻게 보장해줄 수 있는지, 있다면 어느 정도까지의 권리와 책임을 부과할 수 있는지 등, 자연의 권리를 둘러싼 법적 논의의 내용은 폭넓기에, 당장에 답을 내리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논의가 점차 활발해지고, 기존 법체계의 변화가 세계적으로 목격되고 있다는 점에서, 자연과 인간의 관계가 새로이 구성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언제나 자연은 사람이 다스리거나 보살펴야 하는 ‘자원’이자 대상물이었지만, 이제는 인간과 자연이 보다 동등한 관계가 되어가고 있다는 기대입니다.
2021년 한국에서는 동물이 물건이 아님을 선언하는 민법 개정안(제98조의2 신설)이 국무회의를 통과했습니다. 법체계상 동물이 권리의 주체가 아닌 객체이기 때문에, 여전히 특별한 규정이 없이는 물건에 관한 규정을 준용한다고 밝히고 있으며, 관련된 법률들이 앞으로 어떻게 개정되어 나갈지 그 방향을 확인해보아야 하겠지만, 동물의 법적 권리에 대한 논의가 더욱 활발해질 수 있는 물꼬를 트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언젠가는 산양이, 설악산이, 법적 권리의 주체로서 법정에서 권리를 요구하는 상상을 해봅니다.
참고기사
1. 산양소송 모의법정 재판부, ‘설악산 케이블카 공사중지 선고’를 내리다.
2. ‘설악산 산양’ 케이블카 반대 소송 각하…당사자 인정 안돼
글: 이수빈 녹색법률센터 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