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탐단활동기 – 산불을 피한 생명들은 어디로 갔을까?

지난 3월 6일 발생한 울진·삼척 산불은 9일간 산림 2만여㏊를 태우고 213시간43분 만에 진화되었습니다. 역대 최대·최장 산불이었습니다. 6월3-4일 양일간 녹색연합은 시민들로 구성된 야생동물탐사단을 꾸려 울진·삼척 산불 피해지의 야생동물 서식지를 조사했습니다. 시민활동가 여러분의 참여기를 소개합니다. 그 현장으로 함께 가요.

1.

우리는 인류가 대규모 멸종위기에 직면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미디어를 통해 알려진 자연적, 사회적 재난의 현장. 그로 인해 소외되고 사라지는 존재들, 설마하는 마음은 믿고 싶지 않지만 이미 오래전 시작된 일들이다.

야생동물 탐사는 온라인 줌에서 간단한 사전 오리엔테이션으로 시작되었다. 한국의 포유동물 81종 중 멸종위기 포유류는 20종이라는 활동가의 말, 그중 우리가 탐사할 산양은 멸종위기 야생동물 1급으로 총 800마리 개체수가 강원과 울진에 살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면서 나는 산불피해지인 울진-삼척으로 이어질 탐사를 준비했다.

탐사는 두 가지 활동을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경북 울진과 삼척 일대에 서식했던 100마리 내외 산양의 서식 확인을 위한 탐사로 산양의 똥으로 개체의 흔적을 찾고, 산양의 모습을 포착 및 관찰하기 위해 센서 카메라를 장착하는 일이다. 이동 동선에서 산양의 똥을 많이 발견할수록 산양의 서식 가능성을 짐작할 수 있다. 험악한 산길을 오르내리며 그곳에서 생존하는 산양과 다른 야생동물의 존재를 생각했다. 산불로 서식지를 잃고 어딘가로 급하게 이동하고 거기에서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할 존재들은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가장 가장자리에 내몰릴 존재들은 인간의 미디어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산불이 난 숲에서 산양의 서식 흔적을 탐사하는 과정에서 무거운 마음과 기대감이 혼재되었다. 산불이 난 장소에 검게 탄 나무와 땅, 그리고 아직 감도는 탄 냄새들. 산불 이후에도 물론 다시 풀들은 자라고 생명은 다시 존재를 드러낸다. 그 존재들을 인간이 보존 또는 복원 한다는 것이 또 무엇인지 생각해 본다. 보존, 복원보다 공존의 의미로 전환하지 않는 다음에야 이것 역시 인간 중심주의를 떠나지 못하는 것 아닐까.

가뭄이, 산불이, 재난이 일상이 된 시대를 살고 있다. 그럼에도 많은 것들을 외주화하고 자원을 소비하기만 하는 도시에 살면 그것을 느끼거나 생각하기 힘들다. 그러나 재난의 현장에, 다른 존재의 생의 공간에 서는 순간 사라지는 사물과 존재를 깊이 인식하게 되면 인간 외의 존재에 대해 질문하게 된다. 야생동물 탐사의 시간, 만나지 못한 그리고 앞으로 만날 기회를 주지 않을 산양과 공간을 공유하는 시간은 나에게 다른 것을 보게 했다.

마지막으로 활동가분들과 참여자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이런 참여의 자리에 같이 있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재난의 시대를 살아가는 한 생물종으로서 큰 힘이 되는 시간이었다.

글 | 11기 야생동물탐사단 송수연님 


2.

서울에서 5시간을 달려 또 1시간을 차를 타고 굽이굽이 들어가야 만나는 울진 금강소나무 숲은 조선 시대 때부터 나라에서 보호해온, 함부로 손댈 수도, 들어갈 수도 없는 깊은 숲이다. 사람의 손이 닿지 않아 생명들이 그들대로 살고 있는 곳이라고 하였다. 굽이굽이 달리는 차 안에서 한눈에 보기에도 짙고 우거지고 어려 보이지 않는 산의 수형은 여느 산과는 달랐다. 작년 이맘때 쯤 생태여행을 소개하는 기사에서 알게 되고 꼭 가보고 싶다 생각했던 이곳을, 산불 때문에 이렇게 오게 될 줄은 몰랐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쓸어대는 송진이 끈적끈적한 나뭇잎과 나뭇가지를 피하고 급한 경사에 발이 미끄러질까 정신없이 걷고 있었다. 줄곧 길이 없는 곳을 걷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거기에 산양의 길이 있었다. 그 길이 보이기 시작하니 신기했다. 산양이 걸은 길을 따라 걸었다. 인간동물의 눈을 야생동물의 눈으로 조금이나마 전환하고 새로운 눈으로 산을 만났다.

까맣고 둥근 타원형 산양 똥, 그보다는 작고 더 완전한 원형에 가까운 고라니 똥, 꼭 임도 한가운데에서 찾을 수 있는 털과 뼈가 섞인 삵의 똥, 딱정벌레 등껍질이 반짝거리는 한 무더기 멧돼지 똥, 줄기에 구멍이 있는 나무 밑동에 좁쌀보다 작은 하늘다람쥐 똥, 깜짝 놀랄 만큼 우렁찬 고라니 울음소리. 산양 똥을 볼 때마다 녹색연합 카메라에 찍혔다는 오묘하게 웃고 있는 듯하던 예쁜 산양 얼굴이 생각났다. 백두대간을 40차 가까이 다니면서도 이들의 자취를 만난 적이 없었다. 쉬이 허락되지 않는 만남, 만남을 만남이라 알아차릴 줄도 모르는 만남이었다.

줄어든 강수량에 약해졌다가 평소라면 견뎠을 충격을 버티지 못하고 죽은 소나무가 여기저기 보였다. 줄기 가장 위에 잎이 더 나지 않는, 몇 년 안에 생을 다할 것이라는 소나무도 보였다. 침엽수가 죽어가는 것은 기후변화의 영향이라고 하였다. 우리는 빙하가 녹는 걸 볼 수 없고, 빙하가 녹고 있는 건 우리와는 먼 일처럼 느끼지만 바로 이 땅, 우리 코앞에서도 빙하와 꼭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붉게 죽어버린 소나무와 까맣게 숯이 된 나무 밑동이 망연했다. 아직도 옅게 탄내를 맡을 수 있었다. 얕은 관목이 올라오기 시작하였고, 활동가들이 놓아둔 뽕잎 냄새가 날 텐데 야생동물들이 불에 탄 산으로 다시 돌아온 흔적은 없었다. 작고, 이동속도가 빠르지 못한 하늘다람쥐의 산불 피해는 얼마나 되는지도 알 길이 없다고 했다. 수가 많고 우리에게 익숙한 소나무는 이렇게 조금씩이라도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있지만, 눈에 잘 띄지 않는 생명들은 어떤 변화를 맞고 있는지 알 수도 없다.

우리 앞에 남은 시간이 얼마나 적은지, 이 위기가 어떻게 가장 취약한 부분부터 터져 나오는지 알게 되면서 많이 슬프고 많이 아팠다. 그러면서도 내 슬픔이 참 실체 없다는 생각을 하였다. 나는 애도할 대상의 이름도 알지 못했다. 누군가는 정확한 이름을 부르는데 나는 부를 수 있는 이름조차 없었다. 산불도 야생동물도 그 얼굴을 그릴 수 없으니 자꾸만 미끄러졌다. 산양의 길을 따라 걸은 이 시간은 그 실체를 마주하는 시간이었다. 그 생을 조금이라도 알게 될 때, 어떤 생들이 사라져갈지 알 수 있을 때, 어떤 상실인지 알 수 있게 되었을 때 냉소하지 않을 수 있다, 그 슬픔에 집중할 수 있다, 그 마음을 쉬이 여기지 않을 수 있다, 별것 아닌 것으로 흘려보내지 않고 그럼으로써 지금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갈 수 있다,

오래 오래 이 땅에서 같이 살자

글 | 11기 야생동물탐사단 하연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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