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의 공간에서 희망 발견하기

야생동물탐사단 활동에 이어 6월 25일, 녹색연합은 시민분들과 함께 당일 활동으로 산불 재난 현장에 다녀왔습니다. 다행히 장마를 살짝 피해 안전하게 다녀온 현장을 참여기로 만나봅니다. 마음으로 그 곳에 함께 가요. 


서울에서 출발한 버스는 쉼없이 달려 울진 산불 현장에 도착했다. 산불 현장에 도착하니 따가운 뙤약볕을 뚫고 매미 소리가 들려왔다. 산불을 이기고 우렁차게 울어대는 매미가 기특했다.

벌써 3개월가량의 시간이 지나서인지 탄내가 나지는 않았지만 산 속 푸르른 냄새 또한 나지 않았다. 눈에 보이는 나무들은 대부분 벌거벗고 있었다. 본래의 모습을 완전히 잃고 검은 모습으로 우뚝 서 있었다. 나뭇가지를 살짝 만져보자 재가 잔뜩 묻었다. 산을 오르며 옷을 살펴보자 언제 묻었는지 모를 재가 곳곳에 묻어있었다. 이곳의 처참한 죽음을 담기엔 산불 현장이라는 말은 너무나 부족하다는 걸 이때야 알았다. 푸르른 소나무는 없고 단풍처럼 붉게 물든 소나무들이 보였다. 붉은 소나무는 모두 죽은 소나무라고 한다. 어디를 둘러봐도 죽은 소나무가 눈에 보였다.

무거운 마음을 안고 금강소나무 숲길로 이동했다. 화재 당시 불이 금강소나무 숲길까지 번졌지만 다행히 초입에서 진화했다고 한다. 만약 불길이 잡히지 않았더라면 멸종위기종인 산양은 멸종에 더 가까워졌을 지 모르고, 역사적으로 오랫동안 돌봐왔던 금강소나무숲을 순식간에 잃었을지도 모른다. 그곳에서도 화재의 흔적은 남아있었다. 땅을 손바닥으로 훑자 숯검정이 잔뜩 묻었다.

우리는 가끔 숲이 살아있다는 걸 잊곤 한다. 이번 여정에서 숲에서 5분간 아무 얘기도 하지 않고 숲을 느끼는 시간을 가졌다. 5분은 너무 짧았다. 숲은 조용하면서도 분주했다. 바람에 나뭇잎이 나부끼는 소리, 풀벌레, 새 소리를 들으며 나무를 보니 나무의 울퉁불퉁한 기둥이 나무의 삶을 닮았을 것 같다는 육감이 들었다. 시간을 내어 숲을 더욱 느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은 초록색을 좋아하는 것 같다. 신호등, 도로표지판, 소주병, 칠판 등 우리 삶 곳곳에서 초록색을 쉽게 찾을 수 있다. 하지만 가장 생명력 있고 마음을 치유해주는 초록은 자연에 있다.

인류는 편의를 위해 수많은 자연을 멸종시켰다. 지구 바깥에서 생물 다양성을 추구하며 지구를 살핀다면 멸종위기종은 인간이 되어야 할 것이다. 달의 표면에 찍힌 닐 암스트롱의 발자국은 역사적으로 유명한 사건이지만 그 발자국에는 생명력이 없다. 우리가 지금이라도 각자의 위치에서 자연을 위해 노력한다면, 우리가 내뱉는 숨은 수많은 목숨을 빼앗는 숨이 아니라 생명을 불어넣는 숨이 될지도 모른다. 나의 발자국이 찍히는 곳에 푸른 새싹이 돋으면 좋겠다, 이런 저런 상념들 가운데 다시 서울로 돌아왔다.

현장에 있을 때보다 현생으로 돌아와 산불 현장을 되돌아보니 마음이 더 아프다. 내 주변은 변한 게 없기 때문에. 하지만 절망하지 않으려 한다. <어린이라는 세계>라는 책에 이런 구절이 있다. ‘언제나 절망이 더 쉽다. 절망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얻을 수 있고, 무엇을 맡겨도 기꺼이 받아준다. 희망은 그 반대다. 갖기로 마음먹는 순간부터는 요구하는 것이 많다. 바라는 게 있으면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고, 외면하면 안 된다고, 심지어 절망할 각오로 해야 한다고 우리를 혼낸다. 희망은 늘 절망보다 가차 없다. 그래서 우리를 걷게 한다.’

녹색연합이 절망의 공간으로 나를 데려가, 희망을 주었다. 함께 걸었던 발걸음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다.

글 | 산불 현장 지금은 어떤가요? 참가자 김현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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