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양구조대의 1박 2일

산불이 지나간 울진/삼척일대, 산양구조대와 함께 산양 긴급먹이 급여 활동을 진행했습니다. 참가자 분들의 생생한 후기로 현장을 공유합니다. 

첫째 날 일지 

우연히 어느 백패커 분이 공유하신 녹색연합의 “울진삼척 산불피해지 긴급 산양 먹이주기” 활동 공고를 보고, 울진삼척지역 산불피해가 극심하다는 이야기가 아른거려 함께하게 되었다. 파릇파릇한 새순이 올라와야 하는 시기인 초봄, 큰 산불이 일어나 많은 식물과 숲이 탄 상황인 만큼 피해지 지역에 서식하는 생물들과 초식동물들에게 큰 타격이 갔을 듯 싶어 걱정도 되고 안타까운 마음이었다. 활동 전날에 도착하여 미리 텐트를 치고 짐을 풀고 기대에 부푼 마음으로 잠을 청했다.

다음날 국립생태원과 종복원센터 그리고 녹색연합 활동가분들과 산양 서식지로 차를 타고 포장되어 있지 않은 임도를 따라 올라가니, 굽이굽이 산 위로 올라가는 길 주위로도 화마가 휩쓸고 간 흔적이 생생했다. 검게 그을린 소나무와 바짝 말라버린 나뭇잎. 전날 밤 야영지로 오면서 어둠에 가려 미쳐 보지 못했던 산불이 쓸고 간 참혹한 현장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임도를 따라 산을 올라갔을까, 어느새 저 멀리 울진 바다가 보이는 능선에 도착해, 녹색연합 활동가분의 간단한 설명을 듣고 바로 산양 구호 활동에 돌입했다. 다양한 종류의 사료를 제공해봤지만 그 중에 뽕잎이 가장 기호성이 좋다고 설명해주셨다. 이번 활동에서는 뽕잎을 본격적으로 산양에게 공급하기 위해 열심히 날랐다. 두 팀으로 나누어 처음에는 두 손에 뽕잎을 들고 능선을 타고 조금 들어가 뽕잎을 봉지채로 바람에 날라가지 않고 썩지 않도록 구멍만 내어서 두고 나왔다. 봉지들은 생분해성 봉지를 이용하거나 추후에 수거하는 식으로 진행된다고 말씀해주신 기억이 난다. 능선을 따라 들어간 먹이 급여 포인트 곳곳에는 산양 똥도 알음알음 있어서, 이곳에 진짜 산양이 사는구나~ 신기해 하며 먹이 급여를 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_^

산양의 서식여부를 알려주는 산양똥자리

그렇게 첫 번째 포인트에서 먹이 급여를 마치고 국립생태원에서 제공해주신 맛난 김밥으로 점심을 해결했다. 2번째 포인트는 각자 준비해 온 등산 가방에 뽕잎을 넣고 이동했다. 3번째 포인트는 ‘국립소광리산림생태관리센터’ 부근으로 이동하고 약 30분간 다리로 이동하여서 들어가 산양에게 먹이를 급여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첫 번째, 두 번째 포인트는 비교적 산불의 피해가 덜한 지역이었지만, 세 번째 포인트는 곳곳의 나무들이 까맣게 변해 목탄으로 변해 잿빛만이 가득했다. 정말 놀라웠던 것은 그런 숲 속에서 산양의 흔적 뿐만 아니라 또다른 천연기념물인 하늘다람쥐의 흔적과 서식처도 발견할 수 있었다는 사실에 자연속에서 살아가는 생명들의 위대함을 실감할 수 있었다. 하늘다람쥐가 살던 나무 속 공간과 똥들 그리고 어떠한 상위 포식자에게 잡아먹힌 하늘다람쥐의 사체까지, 불타버린 이 산에서도 생명들은 건재하게 살아감을 두 눈으로 확인했던 시간이었다.

산불진압 현장의 생생함과 어려움을 이야기하는 이경수 기장

첫째날 먹이주기 활동을 끝낸 후, 산림생태관리센터에서 이번 울진 산불 진화의 주역 이경수 기장님을 직접 만났다. 군에서 쌓은 오랜 비행 경력을 바탕으로 은퇴 후에 편히 쉬실 법도 한데, 산림청에서 베테랑 파일럿으로서 위험천만한 산불 현장을 누비며 우리나라의 산림을 지키시는 모습이 너무나도 멋있고 감사했다. 닥터 헬기나 우리나라에서 운용되는 다양한 헬기들 중 산림청에서 쓰이는 산불 진압 헬기가 가장 위험성이 높고, 프로그램으로 시뮬레이션을 해도 위험한 수치로 나오는 비행이라는 사실에 수많은 기장님들에게 감사해지는 가슴 찡한 시간이었다.

봄철만 되면 건조하고 바람이 많이 부는 동해지역, 매년 봄철만 되면 산불 소식이 전해지는 지역이지만 올해는 상황이 달랐던 것 같다. 여의도 면적의 72배를 태우며 213시간 만에 잡힌 역대 최장 기간의 산불. 울진/삼척에 거주하시는 민간인분들의 피해 뿐 아니라 그 속에서 인간과 벗삼아 살아가는 동식물들의 피해도 더욱 극심했다. 비록 불타버린 숲이지만 많은 분들의 노력과 도움으로 그 속에서도 봄은 오고 생명들이 꿈틀거리는 것을 두 눈으로 두 손으로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앞으로도 정상화까지 많은 시간이 소요되겠지만 하루 빨리 잿빛 숲이 다시금 파릇파릇한 생기를 되찾을 수 있도록 많은 기여와 관심을 가져야겠다.

글 | 산양구조대 김나은 님 

둘째 날 일지

산불이 휩쓸고 간 잿빛의 숲3월 4일, 다음 날 일정을 위해 준비할 것들을 생각하느라 이른 퇴근길임에도 마음이 급했다. 그러다 단톡방을 통해 알게 된 울진 산불 소식, 전국소방동원령이 발령될 만큼 큰 불이란 것에 바로 직전까지 생각하던 것들이 하찮게 여겨졌다. 많은 인력이 투입되었음에도 역대 최장 시간 산불 기록을 갈아 치우며 서울 면적의 1/3 을 넘는 산들이 잿더미가 되었다.  

산불 진화 작업이 한창이던 때에 계속해서 신경이 쓰였던 것은 ‘금강송 군락지’의 피해 여부였다. 2년 전 수목원 관리원 기자단 활동을 하면서 처음 금강송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된 것이 계기가 되어 나름 애착을 갖고 있는 수종이었다. 그래서 산불 진화 후 금강송 군락지가 건재하다는 소식을 알게 되었을 때엔 안도하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화마가 휩쓸고 간 울진 지역에 무언가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았으나 개인으로서 봉사활동을 간다는 것이 오히려 관할 행정기관을 번잡스럽게 만드는 일 같았다. 그렇게 기회를 노리며 시간을 보내던 중 ‘산양 긴급구조활동’에 참여할 인원을 모집한다는 녹색연합의 인스타그램 피드를 보았다. 순간 “이거다!” 싶었다. 피해를 입은 건 나무와 이재민 뿐만이 아닌데, 그 곳이 집인 여러 동물들도 피해를 입었을 건데 나는 너무 피해범위를 좁게 생각하고 있었다. 마침 구조 활동이 있는 주말은 일정이 비어 있어서 이틀 간 참여를 할 수 있었다. 첫날에는 울진 소광리 일대를 다니며 산양이 좋아하는 먹이인 뽕잎을 잔뜩 날라다 주었다. 등산을 해야하는 구간이 좀 있었으나 다른 참가자들 대부분 백패킹을 하는 분들이라 진행이 순조로웠다.

산양이 좋아하는 뽕잎

이번 활동에서 가장 큰 충격을 받은 건 둘째 날에 울진과 삼척의 경계지역에서 바라본 잿더미가 된 산등성이 풍경을 봤을 때였다. 온 산에 연두빛이 칠해져야 할 계절인데 그곳은 온통 먹물이 엎질러져 있었다.

첫째 날에는 그나마 산양이 산불 발생지역에서 이동해와 먹이활동을 할 수 있는 곳을 다녔기에 약간 불에 탄 나무들만 보았는데, 둘째날에 마주한 풍경에서는 생명력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들 정도였다. 걷고 또 걸어도 잿더미 숲은 계속 이어졌다. 2020년에 발생한 안동 산불 지역을 3년 째 고속도로를 오가며 보고 있는데 그곳도 아직 화마의 흔적이 진하게 남았는데 이 정도 규모의 피해는 언제쯤 복구가 될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예전처럼 숲이 우거지고 여러 동물들의 쉼터로서 기능을 하려면 짧게 잡아도 수십 년이 걸릴텐데 살아 생전에 그 모습을 볼 수 없을 것 같아 가슴이 먹먹했다. 

절망의 색이 진득한 잿더미숲을 걸으면서 난 먹먹한 가슴을 뚫어줄 무언가를 계속해서 찾고 있었다. 땅 위로 솟아난 연두빛, 너무 작아서 자세히 보지 않으면 보이지 않을 것 같은 고사리를 비롯한 여러 새순들이 이 잿더미를 뚫으며 솟아나고 있었다. 산불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이 산이 오히려 낙담하고 있던 나에게 희망을 보여주는 순간이었다. 나의 먹먹했던 가슴에 바늘구멍만한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 들었다.

이번 활동이 끝나고 며칠이 지나 이렇게 후기를 적고 있다. 처음에는 울진에 오면서 먹이 활동에 어려움을 겪는 산양 구조활동에 오면서 뿌듯한 마음을 갖고 복귀하는 내 모습을 상상했다. 그런데 지금은 고민과 불편한 마음이 가슴에 한 가득이다. 왜 대형 산불은 매년 반복되고 점점 더 심해지는 양상일까? 산불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이미 잿더미가 된 산에서 발견한 작은 희망을 키워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짧은 시간 안에 명안이 떠오르지 않겠지만 지금의 고민과 불편한 마음을 쉽사리 내려놓지는 않겠다. 지금의 나는 어리석지만 내일의 내가 알게 될 해답으로 이어지는 희망의 끈을 놓치지 않을 것이다. 

글 | 산양구조대 송영한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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