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순례 – 우리 이렇게 먹고 걸었습니다

녹색연합이 지난 4월 5일부터 8일간 다녀온 녹색순례에서는 전체 식단을 비건 식단으로 구성하여 먹었습니다. 이번 [비건이건아니건]에서는 ‘음식에 포커스를 맞춘’ 신입활동가의 순례적응기로 들려드립니다. 함께 만들고 함께 먹은 비건 식단 이야기를 읽으며 마음으로 함께 걸어주세요!


 

처음 <비건이건아니건> 원고를 제안받았을 때, 사실 조금 ‘헉’ 했다. 일단 나는 비거니즘, 혹은 채식에 대해 관심을 가진 지 비교적 얼마 안 된 상태였다. 그 전까지는 뭐랄까… 함께 식사를 하는 사람이 채식을 하면 함께 채식을 하고, 육식을 조금은 줄이자고 생각 하는 정도였다. 그런데 채식에 대한 원고를 제안 받게 되다니! 두근두근하면서도 살짝 걱정이 앞섰다.

글을 어떻게 쓸까 고민하다 순례가 시작 되었다. 걷고 걷고 또 걸었다. 사람은 먹고 살아야 하는 법, 매일 숙소에서 밥을 해 먹으면서 걸었다. 네 개의 모둠이 돌아가면서 그날 저녁과 그 다음날 아침의 밥과 국을 담당했고, 모둠별로 각자 가져온 반찬들을 나누어 먹는 방식으로 식사가 이루어졌다. 참여자 중에는 비거니즘을 지향하는 분도 있었고, 육류의 소비를 줄이자는 녹색연합의 내부 논의도 있었기에 각자 싸오는 반찬은 알아서 하되, 모두가 먹는 밥과 국은 채식으로 구성했다.

 

1일차 저녁 : 들깨미역국

순례는 김포 애기봉 평화전망대에서 시작했다. 걷는 내내 비를 맞으며 차가워진 몸이 따뜻한 밥과 국에 사르르 녹았다. 아직 순례가 낯설고 비를 맞으며 걸어서 그런지 컨디션이 조금 떨어진 상태였는데, 숙소에 도착해 개인 정비를 하고 밥을 먹으면서 적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만큼 내게 있어서 첫 저녁은 중요했다. 맛있는 밥 한 술에 자연스럽게 순례 속으로 한 걸음씩 들어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서른 명이 먹을 국을 끓이는 것은 쉽지 않다

두부도 데치고!

 

2일차 저녁 : 비지찌개 

실수로 사진 몇 장을 날렸는데 하필 이 날 식사 사진이 없어졌다(슬픔) . 전날 종일 내리던 비는 그쳤지만 하루 종일 바람이 불었다. 컨디션이 제대로 올라오지 않아 스스로에게 답답함과 조급함을 조금 느꼈다. 그래도 따뜻한 밥과 국이 들어가니 피로가 조금 가시면서 체력이 회복되는 것 같았다. 비지찌개를 오랜만에 먹었는데, 별다른 재료 없이 비지와 김치만 넣었는데도 이렇게 고소할 수가. 이때부터였을까… 평소보다 곱절은 많이 먹기 시작한 게…

 

3일차 저녁 : 들깨수제비

교동도에 도착했다. 잠깐 화장실 가는 사이에도 춥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바람이 무척 강하게 부는 섬이었다. 들어가는 길에 변수가 생겨 애를 좀 먹었지만 무사히 도착했고, 교동도 숙소에 도착해서 먹는 저녁은 무척 맛이 좋았다. 저녁은 들깨수제비였다. 이날은 준비부터 분위기가 좋았다. 아무래도 바람을 잔뜩 맞고 따뜻한 곳에 도착해서 그런 것 같았다. 

양파도 손질하고

감자는 껍질째 먹을 거니까 깨끗하게 씻는다

 

4일차 저녁 : 미역국, 김치찌개

내가 속한 모둠이 준비를 맡았다. 교동도에서 식당을 하셨고 지금은 평화운동을 하시는 인천녹색연합 회원과 우경선 상임대표님께서 식사 준비에 함께 하셔서 수월하게 저녁 준비를 할 수 있었다. 함께 걷던 모둠원이 한데 모여 쑥전과 부추전을 부치는 것이 재미도 있었고, 우리가 만든 음식을 맛있게 먹는 순례단을 보니 뿌듯했다. 여담으로 숙소에 도착할 때까지 깃발 담당을 했는데, 선두에 서서 깃발을 들고 가다 보니 책임감도 들고 기분이 묘했다. 

쑥전을 부치고 자르고

열정적으로 전을 뒤집는 활동가와 흐뭇하게 바라보는 대표님

 

5일차 : 고추장찌개

후발대가 합류했다. 사람이 많아져서 활기가 충전된 것은 물론이고, 가져온 반찬으로 밥상까지 풍성해졌다. 새로 온 사람들이 반가웠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늘었다는 사실에 들떴다. 저녁은 고추장찌개. 새로운 자극이 필요한 시점 마침 자극적인(!) 국물을 먹어서 얼큰하니 기분이 좋았다.  

호박은 큼직하게 썰어야 맛이 좋다

점점 식사량이 많아지는 활동가들을 위해 밥은 많이!

 

6일차 저녁 : 배추된장국

강화도에서 배를 타고 볼음도에 도착했다. 배를 타고 모래를 걷고 바위도 한참을 탔는데, 순례 막바지에 이르면서 체력이 많이 떨어지고 있었다. 물론 저녁으로 먹은 배추된장국은 무척 맛있었다. 숙소에 도착해 편하게 쉬고 먹는 저녁은 언제나 참 만족스럽다. 아, 우리 모둠은 첫날부터 식사 후에 간단한 티타임을 가졌는데, 차를 마시면서 하루를 정리하고 소박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참 기억에 남는다. 황차, 메리골드차, 국화차를 나누어 마시며 지친 몸과 마음을 다스리고 이야기를 나누며 지난 하루를 복기하기도 했다. 

설거지는 그때 그때 하지 않으면 양이 엄청나다

맛있는 배춧국 끓이는 중

 

순례 기간 동안 몸관리를 할 겸 식사량을 조금 줄여보려 했던 계획이 무색하게도 평소보다 더 많이 먹고 말았다. 밥이 맛있어도 너무 맛있었고 국을 잘 먹지 않는 타입인데 국도 엄청 먹었다. 특별한 메뉴가 아니었음에도, 고기나 생선이 들어가지 않았음에도 모든 식사를 맛있게, (정말) 많이 먹었다. 크게 자극적이지도 소비적이지도 않은 식사를 많이 한 것이 순례를 처음부터 끝까지 완주할 수 있게 하는 동력이 아니었을까. 

7박 8일간의 순례를 지나고 보니, 고기나 생선(땅살이나 물살이)을 먹거나 이용하지 않고도 맛있는 밥과 국을 만들 수 있고, 모두가 맛있게 먹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비록 비거니즘과 관련한 공부를 한다고 해도 아직 채식이 익숙지 않은 나인데, 채식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해 볼 수 있었고 채식의 여러방식을 경험할 수 있었다. 이번 순례를 계기로 다음 순례에서도 채식이나 비거니즘에 대한 고민이 꾸준히 제기되고 더 성장하면 좋겠다. 개인적으로도 채식을 조금씩 시도해 보고 싶어졌다. 녹색연합에 들어오고 첫 순례. 이렇게 좋은 경험을 하게 해 준 순례단, 지원팀, 기획단 모두에게 감사드리고 싶다. 

덧붙여서, 같이 밥을 먹는 사람을 식구(食口) 라 한다고 한다. 같이 밥을 하고 나누어 먹으니 정말 녹색연합의 식구가 된 것 같았다. 녹색연합의 식구라는 말, 참 좋다고 생각한다.

글 | 기후에너지팀 장성열 활동가


<비건이건 아니건>은 말 그대로 내가 비건이건! 네가 비건이 아니건! 우리가 조금씩 비건 지향 생활을 시작해볼 수 있도록 기획되었어요. 비거니즘과 조금 더 친해지는 생활, 한 걸음씩 함께 나아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