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비건이 됐나요?”라는 질문에 답하기는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가랑비에 옷 젖듯 비건을 지향하게 되는 사람도, 특정한 일을 통해 비건이 된 사람도 있어요. 삼시세끼뿐 아니라 일상의 전반을 모두 바꿔버린 비건 지향 생활, 비건을 지향하기까지의 고민의 시간과 예상치 못한 즐거움에 대해 활동가들의 이야기를 들려드릴게요.
① <<나의 가랑비>>
채현 : 나는 불과 4~5년 전까진 스스로 비건이 될 거라고 상상해본 적이 없었어. 다들 시기는 조금씩 다르지만 마찬가지였을 것 같아. 탈육식을 한다는 건 사실 쉬운 선택은 아니잖아. 삼시세끼 뿐 아니라 우리의 일상, 가치관 자체를 뒤흔들어버리니까. 그만큼 주변에서 채식을 시작하게 된 계기를 물어보는 경우가 꽤 있지. 나는 특정한 계기가 있다기보다 오랜 기간 가랑비에 옷 젖듯이 조금씩 영향을 받았던 것 같아. 다들 어떤 이유로 탈육식을 하게 됐는지 궁금해.
삐삐 : 보통은 탈육식을 하게 된 이유를 물을 때 엄청난 계기를 상상하는 것 같아. 그런데 육식에 대해 고민하게 되는 순간들은 늘 존재하거든. 그런 순간들이 쌓이다가 일상적인 작은 하나의 순간에 ‘이제는 탈육식을 더는 미룰 수가 없겠다’ 생각이 번뜩 드는 것 같아. 예전에 팟캐스트에서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개의 죽음’이라는 책을 접했어. 작가님은 개 식용 산업 관련 시위에서 찬성 측도, 반대 측도 같은 질문을 한다 했어. “닭은? 돼지는? 소는?” 같은 질문에 반대의 대답을 할 수 있었어. 개식용의 본질은 생명의 존엄성을 존중하는 일인데 나는 채식을 단순히 육식의 탄소배출량 같은 과학적 수치로 그들을 소비하고 있었던 거야. 채식과 환경을 넘어서 탈육식과 동물권으로 내 관점 자체가 넓어진 순간이었어.
그 당시 나는 한창 페미니즘 공부를 하고 있었어. 페미니즘은 단순히 여성과 남성 간의 권력을 이야기하는 것뿐만 아니라 여성들 간의 권력 차이, 더 나아가서 권력 그 자체에 대해 고민하는 학문이라고 생각하거든. 그런데 팟캐스트 들으면서 인간인 내가 동물에게만큼은 압도적으로 권력적인 존재고, 그들의 목소리는 내가 차단하려고 하면 아무런 어려움 없이 듣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깨달았어. 페미니즘이라는 학문 자체가 고민하고 나아가려고 하는 평등이라는 감각이 내가 비건이 되어만 하는 확신을 줬던 것 같아.
인희 : 평소 이런 질문을 들으면 대단한 계기가 있어야 할 것 같아 살짝 민망했어. 과거에 동물을 대상화하고 육식을 좋아한다고 말했던 순간들이 멀지 않거든. 생각해보면 나 역시 작은 순간들이 차곡차곡 쌓여왔어. 친구에게 문어 지능이 상당히 높다는 이야기를 듣고 탈육식을 생각해보거나, 기후위기가 심각하다 보니 주 1일, 1일 1끼 채식을 실천하면서 자신감을 얻기도 했어. 환경을 위해서 간헐적 채식을 해오던 내가 ‘탈육식을 할 수밖에 없겠다’고 느낀 건, 동물이 생명으로 다가왔을 때의 경험들 때문인 것 같아. 특히 기억에 남는 건, 개 구조센터에 봉사를 하러 간 적이 있는데 개들한테 죽은 닭과 오리를 먹이로 주는 게 그렇게 이상해 보이는 거야. 우리는 개가 식용견이 되지 않도록 구조까지 하면서, 우리가 구조해 온 동물에게 다른 동물을 죽여서 먹이로 주는 현실이 이상하게 느껴지더라고. 그런 경험들이 하나씩 쌓였던 것 같아.
채현 : 나는 육식에 길들여진 입맛을 내려놓는 게 쉽지 않아서 책, 다큐를 찾아보고 영향을 많이 받았던 것 같아. 탈육식을 시작하는 과정에서 특별히 와닿았던 콘텐츠가 있을까?
인희 : 나는 처음에 계란🔗과 우유🔗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다룬 영상을 봤어. 유제품과 계란은 ‘부산물’로 여겨지는데, 계란과 우유의 생산 과정이 고기보다 결코 덜 잔혹하지 않은 거야. 영상이 짧기도 해서 잊지 않기 위해 자주 보고, 주변에도 공유했는데 짧게나마 안 먹겠다는 친구들도 많았어. 책 <고기로 태어나서>도 추천해. 저자가 5년간 돼지, 닭, 개 농장에서 직접 일하면서 마주한 동물의 삶, 노동자들의 삶을 다룬 르포르타주인데 내가 먹는 고기가 어떻게 생산되는지, 육식으로 희생되는 동물 외에도 노동자들이 어떤 환경에서 일하는지 생각해볼 수 있어서 의미 있었어. 채식을 지속해봐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됐지.
삐삐 : 나는 2019년에 비건 캠프에 참여했는데 그 자리가 정말 좋았어. 종 차별주의가 무엇인지 살펴보고, 종 차별주의적 사자성어, 속담 등을 다른 언어로 바꿔보는 프로그램도 있었어. 2박 3일간 모든 음식과 제품들이 비건으로 준비됐어. 세안 비누, 샴푸, 트리트먼트, 고체 치약, 티백, 과자 등 모든 제품이 비건이었어. 그때 ‘광범위한 측면에서 비건 실천을 할 수 있구나’ 체감했지. 또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비건 친구들을 많이 만나면서 서로 더 무해한 삶에 대해서 계속 만나서 이야기 할 수 있는 네트워크가 생기게 됐어.
② <<존재가 주는 울림>>
채현 : 나는 아무래도 사람과 동물, 그 자체의 존재로부터 큰 울림을 느꼈던 것 같아. 나는 우유와 계란을 위해서 소와 닭이 어떤 삶을 사는지 알게 되면서 비건을 지향하게 됐어. 우유를 위해 암컷 동물은 임신과 출산을 반복하고, 수평아리🔗는 생산성이 없다는 이유로 포댓자루에 넣어 질식사를 시키거나 분쇄기에 넣어버리기도 하잖아. 철저히 가려진 정보들을 접하면서 ‘생명’이라는 것을 이야기할 때 우리가 먹는 동물들도 포함해서 생각하게 됐어. 당연하게 배제했던 범주였는데 말이야. 둘의 경우 어땠어?
인희 : 나는 ‘산호초를 따라서🔗’ 다큐에서 짧게나마 산호초와 물살이들의 삶을 엿본 순간이 정말 인상 깊었어. 해가 뜨면 물살이들이 이동하면서 산호초에서 교통체증이 생긴다거나, 새가 지저귀듯 소리를 낸다거나, 물살이가 농장에서 작은 식물이나 조류를 키우기도 한다는 거야. 고기를 먹지 않는 페스코 채식은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저들도 우리와 같은 생명’이라는 점이 와닿는 순간이었어.
삐삐 : 나는 초등학생 때 소에게 짚을 먹여준 적이 있어. 짚을 신나게 먹이다 보니 옆에 놓인 짚이 다 떨어진 거야. 그래서 땅에 자라있는 싱그러운 풀을 뜯어 줬는데 너무 잘 먹는 거야. 신나서 풀을 주다가 주변 풀들을 다 뜯어버려서 다시 짚을 주니까 먹질 않더라고. 그때 소들도 맛있어하는 음식이 있다는 걸 알았어. 비건이 되고서야 그 순간이 내게 작은 물방울이 쌓이는 순간이었다는 걸 깨달았어.
③ <<비건의 기쁨과 슬픔>>
채현 : 탈육식을 하는 게 어렵진 않았어? 나는 육식에 길들여진 입맛을 내려놓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어. 채식을 시도하는 게 쉽지 않다는 말이 난 이해가 돼. 예상치 못한 즐거움도 많지. 비건 음식을 여럿이 만들어 먹을 때 안전한 분위기도 사랑스러워. 누군가 비거니즘은 무엇을 제한하고 한계를 두는 게 아니라, 열어두고 연결되는 데 의미가 있다고 말한 적이 있어. 나는 무엇보다 다른 존재들과의 연결감을 느끼게 됐어.
인희 : 나는 먹는 걸 굉장히 좋아하는데 처음 시작할 땐 ‘행복’으로 느끼던 게 없어지니 밥 먹는 재미도 없고 항상 허기졌어. 먹을 게 없으면 타협하게 되기도 했어. 비건 SNS를 찾아보거나, 녹색연합의 <함께 채식> 100일 프로젝트에 참여한 것도 많은 도움이 됐어. 참여자들이 어떻게 식단을 구성하는지 참고하면서 동물성 음식을 대체하고, 포만감을 느끼는 법을 알아 갔어. 시작할 때 나만 어려움을 겪는 게 아니란 걸 알고, 내게 맞는 방법들을 조금씩 터득해온 것 같아. 예전엔 귀찮아서 고기를 대충 구워먹었는데 요리하는 걸 더 좋아하게 됐고 매 한 끼 한 끼가 소중하다는 걸 느껴. 오히려 식비가 줄었고 무엇보다 요리와 설거지가 쉽다는 장점도 있지. 특히 비건을 지향하면서 시야와 감각이 넓어졌어. 다른 존재들에 대한 고통을 인식하게 됐고, 물살이의 삶과 같이 다른 존재들의 삶을 상상하게 됐어. 나는 메마른 사람이었는데, 내가 모르던 세계를 알게 되는 것에 대한 흥미로움도 있어.
삐삐 : 제일 어려운 건 외로움이었어. 주변 사람들이 지나가는 말로라도 같이 밥 먹기 어렵다고 하면 괜히 내가 주변을 어렵게 한다는 죄책감이 들더라고. 내가 더 이상 용인하지 않는 폭력에 대해 아무렇지 않게 농담을 하고, 내가 존중하는 존재를 먹는 것에 대해 언급하는 순간들이 쌓여 유대감을 가졌던 이들과 예전 같지 않다는 감각이 들어. 소중했던 사람들과 무력하게 멀어지는 감각 속에서 한동안 외로웠어. ‘나를 위한다는’ 감각, 배려받고 있다는 감각은 참 유쾌하지 않았어. 배려 차원에서 채식을 준비할 때 ‘내가 이 자리에 없으면 이 식사들이 유지될까?’ 하는 고민은 날 외롭게 했어. 내가 이 자리에만 존재해야만 내가 지향하는 가치들이 지켜진다면 내가 지향하는 가치를 존중하기보다는 내 식단을 존중하는 거라고 생각해.
④ <<선택의 문제에서 나아가>>
채현 : 탈육식을 하면서 어려움에 부딪히는 경우가 자주 있지. 인적, 물리적, 심리적 장벽도 분명 크다고 생각해. 나는 탈육식을 단순히 ‘우리가 무엇을 선택해서 먹느냐’의 문제로만 바라보고 싶진 않아. 채식 선택권이 필요한 건 맞지만, 어떤 식단을 선택하느냐에 대한 논의를 넘어서 축산업이 어떻게 유지되고 있는지 조명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 정책과 제도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느껴지는데, 우리는 무엇을 함께 고민해야 할까?
인희 : 식단에 대한 질문이 육식에 의문을 갖게 하고, 축산업과 노동 환경에 대한 대화로까지도 이어질 수 있다고 생각해. 채식 선택권이 아니라 육식 선택권이 도입되면 좋겠어. 육식이 디폴트인 상황에서 채식을 선택하는 게 아니라, 채식이 디폴트인 상황에서 육식을 선택하는 거지. 그럼 ‘왜 육식을 해야 하지?’ 질문하는 사람들이 많아지지 않을까? 네덜란드의 경우 시 정부에서 주최하는 식단은 채식이 기본이라고 해. 단지 음식 선택권뿐만 아니라 기후, 노동, 동물권 등 사회환경적인 부분을 고려했을 때 그런 변화도 일어날 수 있는 것 같아. 또 동물을 음식을 넘어 생명으로 바라보게 하는 거리를 나누는 것도 필요한 것 같아. 축산업 현장은 우리가 생활하는 곳과 멀리 떨어져 있어서 의식하지 않으면 보기 어렵다고 생각해. 도살장에 실려 가는 소🔗, 수산시장에 잡혀 온 물살이🔗들을 마주한 비질 활동을 쓴 글을 처음 봤을 때, 내가 눈감았던 현실이 마구 섞여서 혼란스러웠던 기억이 있어. 당장의 정책, 제도적인 변화는 떠오르지 않지만 현장을 마주하면서 우리의 먹거리 시스템에 대한 다양한 고민을 나눌 수 있지 않을까.
삐삐: 육식🔗은 상당한 온실가스를 배출할 뿐만 아니라 야생동물 서식지를 파괴하고, 기후위기를 촉진해. 그래서 일회용 컵 보증금제처럼 육류에 대한 환경 비용을 부담하는 육류세 개념이 등장했어. 그렇지만 나에게 채식선택권, 육류세는 충분하지 않아. 먹는 것 만이 전부는 아니니까. 어떻게 동물과 공존할 것인가 질문 해야 해. 캘리포니아 모피 판매가 금지됐듯 더 많은 제도가 탄생할 수 있어. 로드킬 당하는 두꺼비, 방음벽에 부딪히는 새들, 농수로에 빠지는 야생동물 등 그들이 사는 서식지를 지키고, 회복하기 위한 수많은 제도들이 필요하듯 우리는 공존에 대한 감각에 대해 이야기해야만 해.
비건 지향이라는 선택에 단 하나의 이유가 있다기보단, 수많은 순간이 차곡차곡 쌓였다고 입을 모아 말합니다. 누군가와 눈을 맞춘 시간, 음식으로 여겼던 존재에 대해 알아간 순간, 인간으로서 나의 권력을 인지한 순간. 어떤 존재를 먹거나 먹지 않는 ‘개인의 선택’의 문제에서 나아가 먹기 위해 기르는 존재들의 삶은 어떠한지, 이를 유지하는 산업이 어떻게 지속되고 있는지, 우리가 이야기하는 공존이란 무엇인지 앞으로도 함께 고민해나가고 싶습니다.
글: 진채현 기후에너지팀 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