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건들의 겨울나기

비건지향 활동가들의 옷장구경부터 ༼ つ ◕_◕ ༽つ

바람이 차가워지는 계절이 되면 옷장에서 겨울 옷을 하나씩 꺼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겨울 옷들은 여전히 동물의 털과 가죽으로 만들어집니다. 생산 과정의 문제 때문에 비건 지향인들은 겨울에 어떤 옷을 입을 지 더욱 고민하게 되는데요. 

비건을 지향하는 녹색연합 활동가들이 겨울 의류를 어떻게 장만 하는지, 비거니즘과 제로웨이스트는 어떻게 함께 갈 수 있을지 허심탄회하게 이야기 나누었어요. 순간마다 무엇이 가장 좋은 선택일지 고민하며, 계속해서 더 나은 대안을 찾아가고 있는 활동가들의 대화를 들려드릴게요. 

① <<옷을 구하는 기준에 관하여>>

채현 : 비건인 우리, 겨울 옷 하나 장만하기 쉽지 않잖아. 나는 기존에 갖고 있던 패딩 사이즈가 작아서 쇼핑을 하러 갔었는데, 역시나 비건 소재인 것들이 아예 없더라고. 매장에서는 오리털이나 거위털이 보온성 면에서 뛰어나다는 면을 강조하더라고. 비건 소재인 겨울 옷을 찾는게 쉬운 일은 아니지. 다들 겨울 옷은 어떻게 구하고 있어? 

삐삐 : 나는 9월 달부터 당근마켓에 올라오는 웰론 패딩을 찾아봤어. 이전에 갖고 있던 논비건 패딩들은 당근마켓에 팔거나 홈리스 여성단체에 기부했어. 빈티지 가게에서도 울 함유가 안 되어있는 걸 찾다가 아크릴로 된 옷을 사기도 했어.

진아 : 몇 년 전부터 겨울 옷이 고민이 됐어. 겨울 옷 중에 목화로 된 누빔 디자인 같은 걸 좋아하거든. 그런데 누빔 목화 소재로 된 옷은 보통 올드한 디자인이라 잘 만들어지지가 않더라고. 비건 의류들이 나오기는 해도, 여전히 비건 패션 브랜드가 많진 않다보니까 내가 상상하고 원하는 스타일을 딱 찾기는 힘들어. 나는 최대한 새 옷을 사지 않고 100% 중고로 사려고 하는 것 같아. 지금 입고 다니는 패딩은 끝이 헤지고 오리털이 포함되어 있지만 나름 솜 함유율이 높아. 오래 입는 게 좋다고 생각해서 타협해서 입고 있어. 

인희 : 난 비건이 된 지 얼마 안됐는데 지금 갖고 있는 옷들을 오래 입을 생각이야. 얼마 전에 패딩을 꺼내 입었는데, 거위털이 들어가고 모자에도 털이 달려 있는 패딩이었어. 거위털은 직접적으로 보이는 게 아니니까 오래 입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모자에 털이 달려있어서 갑자기 고민이 되더라고. 아무래도 전시 효과*가 있을 수밖에 없을테니까. 이런 경우 어떻게 하는지 물어보고 싶었어. 

진아 : 예전에 있던 옷 중, 털을 뗄 수 있는 옷은 떼고 입었어. 야상 같은 것도 똑딱이로 된 거는 떼고 입을 수 있거든. 떼어내고 보니 족제비 형상을 닮아서 동물 털이라는 게 더 와 닿더라고. 이토록 보드라운 무언가가 그렇게 잔인하다니. 페이크 퍼를 입을 때는 전시효과가 신경쓰이긴 해. 이거 가짜인데! 나는 당당한데 말이야. 

삐삐: 나도 진짜 털은 전시 효과가 있다고 생각해서 떼려고 하는데, 가짜 털은 떼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이 돼. 내 웰론패딩에 붙어있는 털이 가짜 털이거든. 지금 입고 다니는 롱코트는 논비건 소재인데 빈티지로 샀고 좋아하는 스타일이야. 소재가 직접적으로 보이지 않고, 지금도 이걸 대체할만큼 좋은 코트를 못 찾아서 입고 있어. ‘완벽한 비건’이라는 게 이 세상이 없다고 생각 하거든. 완벽한 페미니스트, 완벽한 환경주의자가 없듯이. 항상 고민하는 마음을 포기하지 않는게 중요하다고 생각해. 현재로서 최선의 선택이라고 생각하고, 앞으로도 최선인 선택일지는 모르겠지만 계속해서 더 나은 대안을 찾는 과정에 있다고 생각하고 입고 있어. 

인희 : 삐삐가 방금 이야기한 것처럼 계속 고민해나가는 게 정말 중요할 것 같아. 나는 빈티지 옷을 작년에 하나 샀는데, 보통 빈티지는 사이즈가 잘 안 맞는 경우가 많잖아. 그런데 수선해서 입는 것도 괜찮더라. 나는 아예 남성 코트를 사서 어깨랑 길이를 내 사이즈에 맞게 수선 했는데 만족스러웠어.  

진아 : 귤팁**이네. 선택지가 많이 없다고 했을 때, 사이즈를 다양하게 보고 수선하는 것도 방법일 것 같아. 나는 무엇보다 ‘만족할 줄 알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어. 내가 이미 무엇을 가졌는지 발견하는 태도가 필요하지 않을까? 또 울이 함유된 코트나 목도리는 굉장히 부드러운데 면 소재의 의류는 상대적으로 촉감이 뻣뻣하잖아. 그럴 때 약간의 갈등이 생기는데,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기억하려고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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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효과* 비건을 지향하는 사람들은 SNS에 육식이 포함된 사진을 올리거나 동물 털 소재의 옷을 입었을 때, 타인에게 영향을 미치는 ‘전시 효과’가 있을 수 있다고 봐요. 음식이나 제품만 봤을 때, 그 제품의 생산과정을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이에요. 따라서 ‘전시효과’를 불러일으켜 타인에게 동물 착취를 가볍게 소비하도록 권장할 수 있는 행위를 최대한 지양하려고 해요. 

귤팁** 비건들은 꿀을 생산하기위해 많은 벌이 노동착취되는 것에 반대하며 꿀을 소비하지 않기도 해요. ‘꿀팁’ 대신 ‘귤팁’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는 합니다.

 

② <<그 털은 네 것이 아니다>>

양털을 취하는 과정은 결코 자연스럽지 않다. ©peta

채현 : ‘만족할 줄 알아야겠다’는 이야기에 공감이 돼. 다들 새로운 옷을 최대한 들이지 않는다는 기준이 있다고 하니까 나도 옷을 살 때 중고 물품을 우선적으로 알아봤었는지 돌아보게 돼. 나는 ‘동물 털’이 어떻게 생산되는지 알고 난 후엔, 동물 털로 겨울을 더 따뜻하게 보내는 현실이 이상하게 느껴지더라고. 생산 과정을 알고 놀랐던 소재가 있었어? 

진아 : 모피는 오래 전부터 이야기 되긴 했지. 어렸을 때는 명품 브랜드에서만 동물을 착취해 제품을 만든다고 생각했었어. 악어나 뱀피와 같이 말이야. 범무늬와 같이 누가봐도 생명이었던 제품들은 곧장 불편하게 봤던 것 같아. 그런데 언제부턴가 깊이 관심을 가지면서 의문들 많아졌고, 동물착취가 아닌 제품을 찾기엔 선택지가 정말 없다는 것을 알게 됐지. 거의다인 거야. 막 죽은 라쿤/족제비들이 켜켜이 상자에 담켜있던 이미지를 기억해. 

인희 : 이미 알고 있을 것 같은데 플러킹(Plucking)이라고 해서 살아있는 오리와 거위 털을 뜯어서 채취하는 방식이 활용 되기도 하잖아. 너무 충격적이어서 오리/거위털이 들어간 옷은 잘 안 샀던 것 같아.  

채현 : 메리노울은 ‘뮬싱’이라고 대부분 마취도 하지 않고 엉덩이 살점까지 도려내는 방식으로 채취된다고 하잖아. ‘천연 양털’이라는 단어에서 소비자들이 이런 과정을 상상하는 건 어렵지. 양털 채취 과정을 알게 된 후에는 나는 ‘천연’이란 단어에 굉장히 이질감이 느껴지더라고. 

삐삐 : 전에 친구들이랑 가죽을 써야하나 말아야 하나 이야기하다가, 가죽이 자연물이니까 빈티지 옷을 소비하는 건 괜찮지 않냐고 하더라고. 그런데 가죽도 동물의 살점을 부패시키지 않기 위해 엄청난 양의 방부제가 사용 되고 화학 공정을 거치기 때문에 친환경적이라고 할 수 없겠더라고. 요즘엔 파인애플 껍질 등을 활용한 다양한 소재의 가죽이 나오던데 나는 ‘친환경적이다’의 기준이 단순히 버려져서 자연 분해 되는가에 초점을 맞춰서는 안된다고 생각해. 

가죽은 축산업의 부산물이기 때문에 이 부산물을 최대한 버리지 않고 써야한다는 주장도 있는데, 가죽을 얻기 위해 별도로 축산을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해. 동물 털 같은 경우는 채취 과정에서의 윤리적인 문제에 공감도가 높다고 생각 하거든. 그런데 가죽은 동물 털과 달리 일반적으로 허용치가 높은 편이어서 이런 사실들이 더 알려져야 한다고 생각해. 

③ <<비건 VS 제로웨이스트?>>

채현 : 비건 의류들 중에는 플라스틱 소재로 된 경우가 있어서 사실 ‘친환경’이라고 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지. 그래서 옷을 구입할 때는 비건 VS 제로웨이스트 중에 저울질하게 되곤 해. 이런 고민이 있을 때 다들 어떤 결정을 했는지 궁금해.

삐삐 : 나는 오래 입어야 하는 만큼 한번 소비를 결정할 때 엄청 장기간 고민하고 구매하는 편이야. 전체적으로 ‘제로웨이스트가 옳다’, ‘비건 소재를 고르는게 옳다’가 아니라 상황에 따라 다른 고민하게 되고. 완벽한 선택이라기 보다는 조금 더 자료조사를 해보고 매번 좀 더 나은 선택을 하려는 것 같아.

인희 : 나는 스스로 ‘최대한 새 옷을 구매하지 않고, 구매 하더라도 중고마켓에서 사자’는 기준을 만들었어. 면을 생산하는 데도 많은 양의 물을 사용하고 환경이 오염된다는 사실🔗이 정말 충격적이었거든. 꼭 필요한 것 위주로만 구매하고, 소비해야 한다면 중고 제품을 사는 편이야. 그래서 나는 빈티지 마켓이 보일 때마다 꼭 들르는 편이야.(웃음)

플라스틱 소재로 만든 걸 대체 소재라고 하는데, 비건이 되기 전에는 제로웨이스트랑 비건 중 어떤 걸 선택해야 할지 고민했던 것 같아. 거위털은 결국 분해돼서 사라지는데 플라스틱 소재는 오랜 기간 사라지지 않잖아. 그래서 비건이 되기 전엔 플라스틱 소재보다 동물 소재가 더 낫지 않나 생각한 적이 있어. 당시엔 생명을 생명으로 바라보지 못했던 것 같아.  

진아 : 특히 겨울 옷은 소재에 대해서 많이 고민하게 되더라고! 비건 소재 중에 폴리에스터 100%인 경우도 있는데, 플라스틱 소재의 옷을 입고 싶지 않은 마음도 큰 거야. 한편으로는 동물성 소재의 신발을 계속 신고 다녀야 할 지 고민도 있고. 자연 유래 소재로 된 선택지가 많아지면 좋겠어. 나는 최대한 소비를 하지 않고 오래 쓰려고 하는데, 비건 패션 브랜드의 경우 판매가 돼야 지속되고 확산될 거라 고민이 되더라고. 

④ <<패션산업의 방향>>

채현 : 비건과 제로웨이스트를 함께 고민하다보면 패션 산업에 대해서도 여러 생각이 들지. 한 해 버려지는 옷의 양도 어마어마하다고 하잖아. 기후위기 시대 우리가 이렇게나 풍요로워도 되나 싶고 말야. 패션 산업은 이제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 

인희 : 명품 의류 업계에서 남은 상품을 소각해버린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 재고가 남으면 가치가 떨어지니까 불 태워 버린다는 거야. 의류 기업들은 이런 행위와 패스트 패션 문제를 자각을 하고 책임 의식을 가지고 옷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해.

진아 : 패션 산업에 규제가 필요하지 않을까?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선 모피 금지법이 통과 돼서 모피 제품을 제조하거나 판매할 수 없다고 해. 의류 폐기물을 해결하려면 이토록 많이 생산되는 굴레와 소비자체에 대한 더 많은 이야기가 제기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

삐삐: 더 많이 가지는 것이 풍요는 아니라고 생각해. 소비하는 만큼 우리가 관리해야 하는 것이 많아지니까 오히려 스트레스가 되기도 하잖아. 기후위기 시대에 풍요라는 개념이 더 많이 가지는 것의 개념이 아닐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 옷을 더 많이 가진다고 행복한 것이 아니라, 더 많이 소유함으로써 관리하고 정리하는 시간 때문에 나를 위한 시간이 줄어드는 건 아닐까 생각해봐도 좋을 것 같아.

비건을 지향하는 활동가들이 겨울 옷을 장만하는 수많은 선택의 과정 속에서 어떤 고민을 했었는지 이야기 나누어보았어요. 완벽한 선택이라는 건 있을 수 없기에, 무엇이 더 나은 선택일지 고민하는 마음을 포기하지 않는게 중요할 거예요. 우리가 다른 존재를 해치면서까지 따뜻한 겨울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모든 존재들이 안전하게 자신이 있어야 할 곳에서 따뜻한 겨울을 보낼 수 있길 바랍니다.

글: 진채현 녹색이음팀 활동가

<비건이건 아니건>은 말 그대로 내가 비건이건! 네가 비건이 아니건! 우리가 조금씩 비건 지향 생활을 시작해볼 수 있도록 기획되었어요. 비거니즘과 조금 더 친해지는 생활, 한걸음씩 함께 나아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