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에 깃든 바람 마시러 가자 : 박그림 활동가

설악산에 깃든 바람 마시러 가자

박그림 인터뷰 

내가 설악산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설악산이 나를 보살핀다.

20대에 처음 설악산을 만나, 70대가 된 지금까지. 운동이 곧 삶이고, 자신이 곧 설악산이었던 박그림(녹색연합 공동대표, 설악녹색연합 대표)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묵직한 울산바위를 뒤로한 채 세찬 바람이 부는 설악산 신선대에서 설악산, 케이블카, 환경운동에 대해 나누었던 이야기를 공유합니다.

©설악산국립공원지키기 강원행동

박그림 선생님이 환경운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박그림 선생님의 현장은 처음부터 설악산이었나요?

지금 제 뒤로 울산바위의 커다랗고 묵직한 모습과 설악산 대청봉을 비롯한 설악산 정상부가 보이고 있어요. 이런 설악산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이 산이 궁금하고 깊이 들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으세요? 이런 마음을 가지고 우리는 끊임없이 산에 들게 되고, 산에 들다 보면 거기에 어떤 생명들이 있는가를 들여다보고, 훼손된 부분이 있으면 왜 이게 이렇게 됐지? 하는 생각들을 품게 되죠. 저는 이것을 환경운동이라고 표현하기보다는 산이 주는 풍요로움에 보답하기 위한 어떤 행동, 그 행동을 해야겠다는 마음이라고 생각해요.

저 같은 경우는 66년도에 처음 설악산에 왔었으니까 설악산과 인연을 맺은 건 굉장히 오래됐죠. 그 이후로 끊임없이 설악산을 드나들면서 느낀 많은 아름다움을 통해 제 삶이 풍요로워지는 반면 설악산은 올 때마다 차츰차츰 상처가 늘어나고 아픔이 커지는 걸 느꼈어요. 그래서 92년도에 설악산으로 사는 곳을 옮겨 들어와 살면서 설악산을 지키기 위한 환경운동을 하기 시작했죠.

산에 오를 때는 카메라를 들고 다니려고 한다. 매번 다른 풍경을 보여주는 설악산에서 운이 좋은 날이면 산양을 만나기도 하기 때문이다.

설악산의 무엇이 박그림 선생님을 잡아끌었나요?

20대 초에 설악산을 오르다 먼발치에서 산양을 본 적이 있어요. 당시에는 몰랐지만, 그때 제 가슴속에 들어온 산양의 작은 모습이 점점 크게 자라면서 제가 이렇게 바뀐 것 같아요. 93년에 설악녹색연합을 창립한 후부터 산양조사를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산양의 똥, 흔적을 통해 산양을 직접 만나왔죠.

산양이라는 존재가 가진 야생에서의 그 당당한 아름다움은 정말 야생이 아니면 느끼지 못하는 거잖아요. 그런 존재, 생명이 있기에 설악산이 살아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는 것이고요. 설악산이 계속 살아있기 위해서는 산양이 오래도록 잘 살아야 되겠구나, 생각을 하게 됐죠. 산양뿐만 아니라 설악산에 깃들어 사는 모든 생명이 설악산에서 마음 놓고 살아갈 수 있는 산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생각하고 목소리 내고 있어요.

©박그림

처음 왔었던 설악산과 지금의 설악산, 달라진 것은 무엇인가요?

제가 설악산에 처음 온건 20대 때였는데, 그땐 산에 올라가다 사람소리가 나면 반가워서 쫓아가 악수하고 그랬어요. 그만큼 사람이 없었어요. 지금보다 숲이 울창하진 않았지만 사람은 훨씬 적었고 산길도 훨씬 자연스러웠죠. 그런데 점점 관광붐이 일면서 사람들이 몰려오기 시작했고 지금은 1년에 340만명이 오는 산이 되어버렸죠. 사람들이 많이 오다보니 인공시설들도 더 많아졌고요. 점점 설악산의 아름다움과 자연의 청정성, 원시성을 자꾸 잃어가고 있죠. 아름다워서 슬픈 산이라고 생각을 해요.

 

설악산 케이블카를 막기 위한 싸움을 굉장히 오랫동안 해오셨잖아요. 설악산에 케이블카를 왜 놓으면 안 되는지 쉽게 설명해주신다면.

산에 가면 우리가 가장 먼저 보는 것이 풍경이잖아요. 케이블카는 경관을 해치는 기계예요. 지금 여기서 울산바위를 보는데 거기까지 전선이 쭉 뻗어있고 곤돌라가 매달려서 돌아가고 있다면 저 울산바위가 지금과 같은 온전한 모습으로 나에게 보여질까요? 전혀 아니거든요. 그런 경관에 미치는 영향을 어떤 것으로도 보완할 수 없는 것이 첫 번째 이유예요.

그리고 케이블카를 연결 시키려면 시설을 위한 지주를 박아야 하는데, 그만큼 숲이 사라지게 되요, 상부종점에 5층짜리 건물도 들어가게 되구요. 해발 1500m, 설악산 끝청봉 부분에 5층짜리 건물이 들어간다고 했을 때 그 일대는 어떻게 될까요? 거기 살던 생명들은 어떻게 될까요? 그것이 과연 올바른 일인지, 우리가 거기서 벌어들이는 돈을 가지고 자연을 살 수 있는 것인지, 자연을 우리가 소유할 수 있는 것인지, 이런 생각을 우리는 해봐야 하죠.

선생님을 보면 단순히 자연을 보호하자가 아니라 자연이 곧 나라서 자연을 지키시는 것 같아요. 이런 연결감을 어떻게 느낄 수 있을까요?

지금 이 자리에 서서도 ‘와 멋있다, 사진 찍고 빨리 내려가자’가 아니라 ‘바람을 한번 느껴봐. 바람 속에 설악산 냄새가 섞이지 않았어?’ 이렇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면. 내 가슴 속에 설악산을 가득 채워 돌아가는 것, 그것이 바로 자연과 더불어 사는 길이죠. ‘저 나무, 바람에 너무 시달려서 완전히 휘었잖아’ 생각하며 가서 만져도 보고. 그게 바로 자연에 대한, 나무 한그루에 대한 배려예요. 그런데 이걸 느끼기 위한 지름길은 없어요. 끊임없이 숲에 들어야죠. 수없이 많은 날 숲에 듦으로 해서 그런 느낌들이 자연히 내 몸에 배어들게 되면 언제 어느 자리에 가서도 자연과 마음을 나눌 수 있을 거예요.

설악산 신선대에 타박타박 천천히 올랐다

이미 20년간 설악산을 지키기 위해 싸워 왔지만, 앞으로도 끝까지 싸울거라고 아까 말씀하셨잖아요. 끝까지 싸울 수 있게 하는, 선생님의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싸우다 보면 물론 힘들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어디선가 찾아야죠. 저 같은 경우엔 설악산에서 찾아요. 설악산을 내가 보호한다는 이야기도 저는 싫어요. 왜냐면 설악산 어머니가 나를 보호해주는 것이기 때문에. 내가 힘들고 지쳐서 산에 들어가면 설악산 어머니가 나를 다독여서 다시 일으켜 나아갈 수 있도록 해줘요. 그랬기에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거죠.

그리고 나는 이게 운동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이건 내 삶이에요 삶. 그렇기 때문에 설악산을 위한 일을 하지 않는다는 건 내 삶을 포기하는 것과 같은 것이죠. 그렇기에 멈출 수가 없어요. 살아있는 동안엔 계속해야 하는 것이고 케이블카가 막아지더라도 설악산이 온전한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지키는 일을 끊임없이 해나갈 거예요. 그래서 우리 손자들이 커서 30대, 40대가 되어 설악산에 올라갔을 때 자연의 원시성이 복원된 산을 통해 경이로움을 느낀다면, 그것이 가장 내 손자들을 위한 일이 아닐까 생각해요.

인터뷰. 이다예 활동가

똑똑! 코너에서는 환경운동에 앞장서는 활동가들을 만나 이야기를 주목합니다. 280호 똑똑! 에서는 이다예 활동가가 설악산 현장에 올라 박그림 활동가의 목소리를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