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이 선물이라면, 우리는 얼마나 풍요롭겠는가

작은 공동체 텃밭 농사를 지어서인지 열매를 맺는 가을이면 마음 한켠이 든든해져요. 동시에 ‘무엇이 풍요로운 삶일까?’ 묻게 되기도 해요. 돈이 기준이 되는 현실에서 ‘풍요로움’은 ‘돈’으로 치환되기 쉽지만, 안타깝게도 돈은 기브앤 테이크가 분명한, 차갑고 냉정한 것 같아요. 그런 ‘돈’을 ‘선물’의 관점으로 바라보며 흥미로운 실험을 이어가는 친구의 이야기를 나눠요. 자우의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면 자연스럽게 새로운 질문을 만날 수 있을 거에요. “나는 무엇을 어떻게 나눌 수 있을까?”

충분히 나눌 때, 선물을 받을 수 있는 용기가 생길 지 모른다. 선물은 돌고 도니까.

안녕, 자우! 녹색연합 회원님이시죠, 본인 소개를 부탁드려요!

자우 : 오랜만이에요! 저는 볍씨학교 6년 차 교사 자우입니다. 제주에서 청소년들과 우당탕탕 지내고 있습니다.

가을이라 떠오르는 키워드, 풍요로움! 그리고 문득 자우 프로젝트를 소개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자우 : ‘풍요’라는 키워드를 생각했을 때 최근 일이 떠올라요. 학교에 과일 선물이 많이 들어와 진짜 많은 거예요. 과일 같은 먹을거리들은 빨리 나누지 않으면 썩어서 버려야 되니까 빨리빨리 나눌 수밖에 없거든요. 반대로 돈은 다르죠. 돈을 계속 놔두면 이자가 붙기 때문에 사람들이 계속 가지고 있으려고 하고 나누려 하지 않는 거예요. 프로젝트 <십시일반 주머니>에서는 ‘역이자 경제’를 적용해 봤어요. 돈도 시간이 지나면 가치가 떨어지는 실험을 해봤어요. 예를 들어 100만 원을 만약 누군가 주머니에 기여해 주면 1년 후 -10%인 90만 원으로 돌려받는 식이에요. 10만 원은 정말 필요한 사람한테 선물처럼 이동하죠. 

 

돈도 누군가 서로 다른 무언가가 필요할 때, 필요를 채우기 위해 교환하는 거잖아요. 결국에는 필요와 능력을 연결하는 게 화폐의 역할인데, 지금은 기존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않고 멈춰있죠. 이자가 쌓이니까요. 만약 돈도 시간이 지나면서 가치가 감소한다면? 돈이 많은 사람에게 계속 돈이 쌓이는 게 아니라, 돈이 필요한 사람한테 흘러가는 시스템이 되겠죠. 제 아이디어는 아니고 관심을 두다 보니 알게 되었는데, 선물과 증여는 선주민 사이에 많았다고 해요.

 

제가 정말 돈이 필요했을 때 누군가가 대가 없이 선의를 빌려줬을 때의 ‘감사함’을 느낀 경험도 크게 작용하는 것 같아요. 큰 돈도 아닌데 몇십만 원 정도를 급하게 빌리기가 어렵잖아요. 좀 더 쉽게 돈을 빌릴 수 있으면 좋겠다 싶어 ‘십시일반 주머니’를 만들었죠. ‘함께해 주세요’하고 손을 내밀었더니 잡아주는 사람들이 있어 지금까지도 주머니는 채워져 있고, 여러 사람이 주머니를 이용하고 있어요.

우리가 돈을 빌리려고 할 때는 많은 증명을 해야 하잖아요. 그래서 돈에는 이런저런 마음이 붙고, 어딘지 차갑게 느껴지는데, 자우는 돈으로도 따뜻함을 실험할 수 있다는 걸 증명했어요. 

지우 : 기존 대출 시스템은 조건이 까다롭고, 국가 지원금도 내가 얼마나 가난한 지 증명해야만 돈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도 마음에 안 들었어요. 주머니를 이용한 사람은 생태 교육을 듣기도 하고, 생태적 삶을 위한 작은 집 짓기를 하기도 해요. 농사짓다가 밭을 못 쓰게 되어 다른 삶을 모색 중인 사람, 떠돌아다니다 집 계약금을 마련하고자 하는 사람 등 다양해요.

책 <신성한 경제학의 시대>에는 이런 문장이 나와요. 우리는 수많은 것을 구분해 두 개가 전혀 다른 것인 것처럼 살아가고 있잖아요. 이제 이런 이분법적인 세계관 자체가 잘못됐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죠. 세계가 다 무너져가는 위기의 시대에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는 질문의 답은 ‘모두 분리된 것이 아니라 연결되어 있다’는 것 같아요. 

십시일반 주머니 프로젝트가 나오기까지 다양한 시도가 있었던 걸로 알고 있어요.

 

자우 : 2019년 겨울, 지혜로운 여성의 혜안을 구하기 위해 친구들과 100만 원의 돈을 모았어요. 사용 방향에 대해 다시 이야기하다, ‘녹색’의 지향이 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공모전을 열기로 했어요. 지원 사업을 쓰기 애매한 활동들이 있잖아요. 지원자들이 함께 모여 각자 프로젝트를 소개하고, 필요한 금액을 말하다 보니 ‘저 사람이 조금 더 받는 게 좋겠어.’ 같은 이야기가 이어졌죠. 그때 다양한 형태의 사랑에 대한 네트워크인 ‘사랑의 빛깔’에 대한 공감대가 생겼죠. 소중한 이야기인데, 공적인 지원을 받기 어려울 것 같다고요. 그래서 거기 제일 많은 선물(돈)을 줬어요.

 

또 그때 한 친구가 ‘동물을 위한 위령제’를 하고 싶다고 했어요. 동시에 그가 활동을 해나가는 데 있어서 생활은 어떻게 꾸려가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이 생겼죠. 친구는 동물권 운동에 집중하고 싶어 했지만 원치 않는 과외 노동을 하고 있다고 했어요. 그렇게 프로젝트 운영에 드는 비용이 아닌, 월세 선물하는 게 어떠냐는 제안이 나왔죠. 활동도 본인이 일상을 살 수 있어야 가능하니까요. 그 제안에 합의가 되어 우리는 2달 치 월세 70만 원을 친구에게 선물할 수 있었죠.

 

개인적으로는 그 후에도 친구의 월세가 신경이 쓰였어요. 활동을 해나갈 수 있도록 월세 걱정을 안 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죠. 그래서 함께 지내며 <1주일간 기본 소득 금액 만들기>를 한번 해봤죠. 활동가들한테 생활비를 지원하는 사례는 이전에도 경험했었거든요. 근데 기관이 아니라 개인들이 한 개인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지원할 수 있을까, 궁금했어요. 신기하게 하루 만에 50만 원이 모였어요. 그 친구도 ‘이렇게 나라는 존재를 이렇게 응원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내가 그거를 모르고 있었구나, 그 손길을 애써 잡지 않으려고 하고 있었구나’ 하는 느낌을 전해줬죠.

 

선물하기에 참여하고 싶다는 사람들 덕에 지금 7번째 선물을 진행 중이에요.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어서 시작했고, 지지하는 이들이 있어서 계속 흘러가듯 진행하고 있어요. ‘다른 이에게 필요한 것을 기여해 주고 싶은 마음’, ‘존재를 응원하고 싶은 마음’으로요.

참여하는 사람들도(돈을 기여하는) 다양한 이유가 있을 것 같아요.

자우 : 기여해 주는 사람들의 마음도 궁금하고, 감사를 표하고 싶어서 ‘선물하는 마음’이라는 짤막한 인터뷰를 한 적 있어요. 마음은 정말 다양했어요. 우리 사회가 활동가들한테 많이 빚지고 있다고 생각해 그들의 기본 소득을 같이 보장해 주고 싶다는 사람, 아주 작은 시도일지라도 자본주의의 대안을 직접 만들어 가보자는 분도 있었고요. 이런 시도를 통해 함께 살아간다는 감각을 되찾고 싶다는 이도 있었어요.

 

듣다 보니 다들 기여하고 싶은 욕구는 이미 있었어요. ‘다들 나누고 기여하고 싶은 욕구가 크고, 적절한 계기만 있다면 언제든 이렇게 드러날 수 있구나’ 하고 사람을 신뢰하게 되기도 했달까요? 사람들은 분명히 나눔에서 오는 기쁨과 기여하는 것에 대한 만족감이 있어요. 그걸 건드리고 연결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반면 돈을 선물받는 건 어떤 느낌이었을까요? 받는 것도 ‘나도 나누는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할 때 가볍게, 고맙게 받을 수 있는 것 같거든요. 

자우 : 자신의 존재를 무조건적으로 환대해 준다는 감각을 받았다는 분도 있었고, 불안정한 상황에서 자기가 살고자 하는 삶을 살아갈 때 좀 힘 있게 살아볼 수 있는 토대 되어주었다고 얘기하는 사람도 있었어요. 물론 월 50만 원이 생활을 꾸려가는 데 충분하지는 않을 테지만, 그렇게 스스로를 돌보면서 채워지는 에너지는 또 주변과 사회를 돌보는 데 쓰일 거잖아요. 주머니를 찾는 활동가를 돌보고, 활동가는 그렇게 채워진 에너지로 사회의 또 다른 면을 돌보고. 이런 게 돌봄의 선순환 아닐까요?

앞으로 더 해보고 싶은 프로젝트가 있나요?

자우 : 더 많은 사람에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주머니 규모를 키우고 싶어요. 저는 대안의 모습을 현실에서 그려봐야 더 나아간 상상이 가능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자본주의를 뒤집는다기보다, 좀 더 자발성이 기초가 되어 사람들 안의 관대함을 일깨우면서 이렇게 작게 만들어가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요.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은 다 좀 풍요로움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이런 작은 실험을 계속, 조금 더 크게 해나가고 싶어요.

 

그리고 마음의 영역을 다뤄보고 싶어요. 주변에서 심리 상담을 많이 받는데 그것도 비용이 크죠. 자기 이야기를 충분히 할 수 있고, 들어주는 사람이 있는 ‘모두를 위한 상담’을 해보고 싶어서 상담 공부를 더 해볼까 싶기도 해요. 

누군가의 필요를 살피다 보면, 우리 이미 나눌 수 있는 충분한 무언가를 가지고 있는 것 같기도 하네요. 

자우 : 사람들한테 가장 필요한 것을 사적 영역으로 두지 않고 공동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싶어요. 그렇다고 운영이 너무 무거워지지는 않았으면 하고요. 저는 인류 공동의 지혜에 제가 탑승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아요. 이미 존재하는 개념으로 진행된 실험이 있고, 제가 경험한 어떤 절실함과 필요가 결합되어 저절로 진화해 가는 흐름을 타고 있다고 느껴요.

인터뷰를 보는 분들이 참여할 수 있거나 함께 알면 좋은 징검다리 정보가 있다면요?

자우 : 선물, 사실 많이들 하고 있을걸요? 일상에서 선물 경제를 떠올리고 갑자기 시작해 보기를 제안하고 싶어요. 누구나 할 수 있어요. 책 <신성한 경제학의 시대>는 조금 두껍지만 읽어보면 많은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을 거예요.

고마워요. 녹색희망 사행시로 마무리 할게요.

자우 :

녹색으로
색다르게 살아간다는 것은
희망을 품고
망망대해에 혼자 나 홀로 떠 있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함께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

잊을 뻔할 때, 제가 해야 할 일이 다시 일깨워지는 것 같아서 좋아요. 저도 감사해요.

인터뷰: 김진아 


‘그린 파트너스’에서는 녹색연합의 가치에 동의하며 다양한 방식으로 협력하고 있는 분들을 인터뷰하여 이야기를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