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연합이 만난 오늘의 그린파트너스는 정명희 님입니다.
오랫동안 녹색연합에서 활동했고, 지금은 상근 활동가가 아닌 전문위원으로 환경 활동을 이어가는 선배 동료이자, 녹색연합의 오랜 회원이기도 합니다. 녹색연합에서 일을 시작한 20대부터 40대까지 온전히 활동가의 삶을 살면서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웬만한 대소사는 녹색연합과 함께 보내며 그 과정에서 어른으로 성장했다는 정명희 님. 50대의 새로운 삶을 다른 공간에서 꾸리고 있는 현재, 환경단체에서의 경험이 없었다면 하지 못할 일들을 해내고 있다는 데요. 제로웨이스트 가게 알맹상점의 매니저이면서 수리상점 곰손의 곰손지기인 정명희 님을 만났습니다. ‘물건을 고쳐 쓰고 아껴 쓰고 다시 쓰는 생활 기술을 익히는 공간’이라고 곰손을 소개하며 도슨트처럼 공간 이곳저곳을 안내해 주셨습니다.
정명희(곰손지기):
시작은 책모임이었어요. 알맹상점을 운영하고 망원동 일대에서 쓰레기 캠페인을 펼치는 모임이 있어요. 망원시장 안에서도 장바구니 사용이나 용기 사용 확산 캠페인을 하는 모임인데, 재작년부터 아침마다 ‘미라클 모닝 책모임’을 했거든요. 그때 읽은 책 하나가 양철북 출판사에서 만든 🔗<리페어 컬쳐>였어요. 와, 모여서 같이 수리하고 수선하는 공간이 있으면 참 좋겠다, 수리하고 수선하는 기회가 우리 주변에 많아지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그냥 가볍게 나눴었죠. 그러다 작년에 알짜 멤버들이 ‘수리권 운동’을 주제로 공모사업에 지원해서 통과됐고, 동네에서 작은 규모로 수리권 활동을 시도할 수 있었어요. 아이폰 수리도 하고, 바느질도 하고, 칼도 갈고, 자전거도 고치고요. 그때 사람들의 반응이 폭발적인 것을 직접 본 거죠. 아이폰 배터리 교체 워크숍에는 작년 한 해에만 100명 정도가 참여했어요. 이 말은 곧 100개의 새 휴대폰이 소비되지 않고, 배터리를 교체해 휴대폰 쓰임의 수명을 연장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물건을 오래 사용하지 못하고 새 물건을 사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허영심이 많아서, 새 물건이 무조건 좋아서 그렇다기보다는 다양한 사회적 조건이 작동해서겠죠. 소위 계획적 진부화라고 해서 물건의 수명을 의도적으로 단축시키거나 교체할 부품이 없어 고쳐 쓸 수 없도록 만들고, 또는 고쳐 쓰는 것이 더 비효율적이고 돈 낭비라는 분위기가 조성되거든요. 쉽게 사고 쉽게 버리는 그런 소비문화 말고, 물건을 오래 쓰고 최대한 자원을 아끼는 것이 기후위기 시대를 사는 새로운 삶의 방법이라는 것을 알리고 싶다는 마음들이 뭉게뭉게 커가던 와중에 중고마켓에 지금의 공간이 저렴한 매물로 올라온 것을 보고 냉큼 계약하게 되었답니다. 곰손지기 중에 엄청난 실행력을 가진 분들이 계시거든요! 이 공간에 있는 집기들도 중고마켓에서 대부분 구해왔고요.
바느질로 구멍 난 양말을 기우는 행위가 궁상맞은 게 아니라 이 방법이 세상을 바꾸는 가장 새로운 방식이라는 것을 알고, 오래될수록 더 좋다는 가치를 경험하는 공간이길, 그런 가치를 아는 사람들과 연결되는 공간이길 바라고 있습니다. 자기 손으로 뭔가를 하나 완성해 냈다는 성취감, 뿌듯함을 한가득 가져갈 수 있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요.
수리와 수선이 ‘기후위기 시대를 사는 새로운 삶의 방법’이라는 정명희 님의 정의를 들으니 라이프 해킹(Life hacking)이라는 표현이 자연스럽게 떠올랐습니다. 생활 속에서 놓치고 있거나 깨닫지 못해서 일어난 불편한 점을 개선해 쉽고 효율적인 방법을 적용할 수 있도록 돕는 아이디어나 도구, 기술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수리∙수선이라는 행위도 일종의 라이프 해킹이 아닐까요. 고장나면 쉽게 새것을 사게 만드는 사회에서 물건을 고쳐 쓸 수 있다는 감각은 무뎌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 감각을 잘 벼리고 일상 속 적재적소에 꺼내 쓸 수 있도록 만드는 도구. 수리는 기후 위기 시대를 해킹하는 새로운 삶의 도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곰손의 오픈 이벤트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지구를 망치는 우리의 습관 자체를 수리하는 행사처럼 보였어요. 그야말로 소비 제로, 옷을 바꿔입는 행사를 통해 진정한 순환 경제를 목격했다고 합니다.
정명희 :
다시입다 연구소의 21%랩을 오픈 행사로 같이했어요. 안 입는 옷 몇 벌을 가져와서 내놓고 다른 옷으로 교환해 가는 행사예요. 한 150여 분이 왔는데, 한 사람당 세 벌씩만 해도 약 400~500벌의 옷이 교환된 거죠. 소비를 전혀 하지 않고, 새로운 옷을 만들기 위한 자원을 쓰지 않고도 모두가 봄에 입을 새로운 옷을 장만했어요. 이 행사를 하면서 ‘새로운 것을 사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다시 생각해 보게 되더라고요. 어떤 물건이든지 지구를 파헤쳐서, 자원을 채취해서 만드는 거잖아요. 그리고 그 자원은 한정되어 있고요. 하지만 물건을 살 때는 그런 생각을 잘 안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새것을 사는 것보다 가치 있는 새로운 삶의 방식들이 존재하고, 오래된 물건이 가치 있다는 이야기를 누군가는 계속해야겠구나, 싶었습니다.
요즘 저는 세상에서 지금 벌어지는 상황을 보며 마음이 되게 조급해지는 것을 느껴요. 지금 당장 뭔가를 해야 할 것 같고. 하지만 우리가 서두른다고 변화가 빠르게 일어나는 것은 아니잖아요. 이 간극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을 갖고 급한 일은 급하게 하면서도, 모두와 함께 가야 할 일은 천천히 가는. 그런 균형을 어떻게 잡을 수 있을까 고민이에요. 녹색연합에서 나왔어도 환경 문제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과 어울리다 보니 일상적으로 환경에 관해 이야기하지만, 30여 명의 활동가들과 함께 일로써 활동하던 때와는 또 다르거든요. 매 순간 세상의 모든 환경 문제에 대한 이슈들이 열려 있고 끊임없이 감각을 키우던 때와 달리 지금은 내가 가만히 있으면 세상이 되게 편안하고 아무렇지도 않을 수 있는 거죠. 녹색연합에서는 ‘케이블카’라는 문제가 하루에도 몇 번씩 나를 깨우잖아요. 하지만 밖에서는 내가 직접 찾아봐야 하거든요. 지금 다루는 자원 순환 이슈나 일회용 플라스틱 이슈에 대해서는 늘 감각이 열려 있지만, 또 다른 이슈에 대해서는 점점 무뎌지는 거죠. 환경단체에서 일을 할 때만큼의 긴장감은 아니더라도 어떤 관점을 잘 유지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정보도 더 찾고 노력해야 하는데 말이에요. 세상이 엉망이 되어 가는데 혹시 나만 모르고 있나? 그런 생각이 들 때도 있고요. 때로는 너무 마음을 쓰게 되니까 일부러 거리를 두기도 하죠.
우리는 희망에 관해서도 이야기나눴습니다. 녹색연합의 활동이 때로는 부정적인 내용으로만 가득해서 대안에 대해 소개하거나 함께 상상할 수 있는 밝은 미래를 이야기하면 좋겠다고 의견 주신 녹색희망 독자 분들도 계십니다. 활동가로 살고 있는 저 스스로도 계속 낭떠러지 앞에 서있다 생각하면 활동의 동력을 찾기 어렵더라고요. 무섭고, 불안하죠. 어떻게 해야 다른 삶에 대해 분명히, 또렷이 낙관하면서 “우린 바꿀 수 있습니다” 외치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 그런 고민이 들어요. 환경활동가 26년 차인 정명희 님은 놓치지 않고 챙겨야 할 가치들에 대해 꾸준히 이야기하는 수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정명희 :
지치지 않고 유쾌하게 활동할 방법이 있다면 좋겠지만, 참 어렵습니다. 부정적인 이야기들을 좀 더 쾌활하게 말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것도 참 어려운 일이죠. 저는 깊숙이 관여하지 않으면 느끼는 피로감이 더 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수십 년 동안 반복되는 설악산 케이블카 문제도 한 발짝 물러서서 보면 그냥 잊을만하면 나오는, 굉장히 피로감 느껴지는 주제거든요. 하지만 이 문제를 제대로 들여다보고 깊숙이 관여하고자 한다면, 그러니까 설악산 케이블카 문제를 내 문제로 여긴다면 피로감으로 느끼기 보다는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실질적인 고민을 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더 가까이 다가오세요! 라고 말하고 싶어요.
크고, 복잡하고, 답을 내기 어려운 일을 해내는 가운데 작은 성과들을 만들 수 있고 그 안에서 성취를 느낄 수 있어야겠어요. 우리가 기쁨과 만족을 충분히 가질 수 있는 그런 다양한 일들을 찾는 시도 역시 게을리하지 말아야 해요. 녹색연합이 당연히 대정부 투쟁을 하고, 이것저것 반대하고 규탄하는 활동을 하지만 일상의 모습을 재구성하고 다른 삶의 가능성을 제시하는 이런 활동도 놓치지 않고 있네! 녹색연합 활동이 내 삶과도 연결되어 있고, 내 삶을 안전하게 만드는 데 도움을 줄 수 있구나, 생각이 들게 해야죠.
요즘 정보라 님의 ⟪지구 생물체는 항복하라⟫라는 책을 재밌게 읽고 있는데, 이런 내용이 나오거든요. ‘우리가 꼭 이길 수 있어서 싸우는 게 아니다.’ 어쨌거나 변화를 만들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을 위로하는 글이라고 해석했어요. 맞아, 우리가 언제 당연히 이길 거라 생각하고 싸웠던가. 그렇잖아요. 운동이라는 건 어떻게 보면 삶의 태도이고 방식이죠. 작은 거라도 그냥 못 넘어가는 사람들이 혼자 애를 쓰다가 안 되니까 같이 모여서 하고, 내가 못 하면 그런 단체를 찾아서 후원이라도 하고요.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거대한 위기 앞에서 당장의 변화가 보이지 않아 조급하더라도 먼 과거를 생각하면 우리의 삶은 조금씩 변화하고 있었고, 앞으로도 어떻게든 변화는 올 거라는 믿음을 가져야 할 것 같아요. 개인인 저도 그렇고, 녹색연합 같은 단체도 그렇고요. 실패했더라도 계속 끝까지 하는 활동들, 예를 들면 새만금 같은 현장이나, 장애인 이동 권리 투쟁 같은 현장처럼 말이에요. 실패 앞에서도, 지는 싸움이어도 계속해야 하는 것들에 대해 시민으로서 운동이 지속되게끔 하는 역할이 커지는 것 같아요. 그런 게 희망이라면 저는 희망이 있다 없다 보다는 희망은 우리가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함께 만들어가자고 말하고 싶습니다.
이 인터뷰를 읽을 시민분들께 전하고 싶은 한마디를 요청했더니 정명희 님은 망설임 없이 ‘녹색연합은 믿을만하다’고 확신에 차서 대답했습니다. 어떤 문제에 대해서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못할 때 오피니언 리더들의 글을 보면서 입장을 정리하기도 하는 것처럼, 환경문제에 관해서만큼은 녹색연합이 그런 오피니언 리더의 역할을 하고 있고 신뢰할 만하다고요. 정명희 님의 마지막 메시지를 전하며 오늘의 인터뷰를 마칩니다.
정명희 : 지구 시민으로서 지구 환경을 더 이상 이렇게 놔둘 수 없다는 자각이 있다면 녹색연합과 함께하시길 추천합니다!
🙌깜짝 이벤트
정명희 님의 인터뷰를 읽고 응원과 짧은 소감을 보내주세요.
다섯 분을 선정하여 정명희 님의 새로운 책 ⟪인류세를 사는 10대를 위한 엄마의 환경수업⟫을 보내드립니다.
수리상점 곰손 @gomson_repair
📍서울 마포구 망원로8길 6 지하1층
기후위기를 건너는 일상 기술을 소개합니다.
수리하고 수선하는 다양한 워크숍이 열리는 대안공간, 곰손에 방문해보세요.
곰손이 금손되어 나온다는 소문이!
참, 정명희 곰손지기는 목요일에 만날 수 있습니다 🙂
인터뷰 정리 : 배선영 홍보팀
사진 : 김진아 홍보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