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에서 산양을 만나다. 예술과 환경의 교차점

안녕하세요, 최황 작가님. 간단히 자기소개를 부탁드릴게요.

안녕하세요, 시각예술 작가 최황입니다. 조각을 전공했지만 주로 영상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가장 최근 작업은 2023년 4월에 공개한 다큐멘터리 영화 <진경산수>입니다.

서울시립북서울미술관 개관 기획전시 <이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에 작품 ‘진경산수’로 참여하셨지요. 작품 소개에 “대중문화로써의 등산과 한국의 산을 관찰하며 한국 사회와 연결하는 다큐멘터리이다. 등산이 제국주의의 파도를 타고 한반도로 유입된 이래 하나의 문화로 자리매김한 역사, 뒤이어 새로운 세대가 그 문화를 이어온 과정을 조명하고, 이어서 급격한 기후 변화와 난개발에 시선을 돌리며 관객을 시대의 목격자로 만드는 시도를 했다”고 소개되어 있던데요. 작품 제목을 진경산수로 지은 이유가 있나요?

겸재 정선 이전까지 산수화는 대부분 중국의 산수화풍과 표현법을 따라 실재하지 않는 산의 형상을 그렸는데,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는 인왕제색도나 금강산전도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실물로서의 대상을 직접 보고 그렸다는 점에서 전대의 산수화와 확연히 구분되죠.

바로 이런 면에서 진경산수를 제목으로 가져왔습니다. ‘등산은 동시대 한국인에게 대중문화다’라는 이야기로 시작해 산에서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기후 위기와 난개발의 모습을 화면으로 옮겨온 작품이거든요. 실제로 제가 지난 10년 동안 등산을 하거나 암벽등반을 하면서 목격한 산의 모습은 꽤 위태로운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었고, 저는 이 실제의 풍경을 담아내고 싶었습니다.

다큐멘터리의 거의 마지막 부분이 잊히지 않아요. 빤히 카메라를 응시하던 산양의 모습이 애처로우면서도, 예민한 감각 탓에 인간 곁으로 가까이 오지 않는다는 산양이 어떻게 그 북적이는 권금성에 오는 걸까 싶고요. 혹시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다면 들려주세요.

처음에 산을 주제로 다큐멘터리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을 때, 가볍고 휴대가 쉬운 고프로 같은 카메라를 이용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카메라들은 익스트림 스포츠를 즐기는 인간 중심적 앵글에 최적화돼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풍경을 정통적으로 담을 수 있는 영화용 카메라를 쓰게 됐습니다. 거추장스러운 촬영 장비를 짊어지고는 설악산 케이블카를 이용하는 사람들과 그곳의 풍경을 촬영하겠다며 권금성 케이블카에 탔어요. 그렇게 케이블카가 올라가는 장면과 케이블카에서 사람들이 내리는 장면을 촬영했더니 진이 다 빠지더라고요. 진작에 담으려 했던 장면들은 웬만큼 확보했으니 이제 내려갈까 하다가 정상까지 가서 그곳의 진경을 담아야겠다고 마음을 고쳐먹었습니다.

권금성에 도착했을 때, 아이 한 명이 “엄마, 저기 염소 있어!”라고 소리치는 걸 들었어요. 사람들이 그 동물을 보고 노루가 아니네 고라니가 아니네 처음 본 동물이네 하며 분주해지더라고요. 그들이 가리키는 건너편의 암벽을 봤더니 글쎄 산양 한 마리가 소나무 아래에 엎드려 한가롭게 되새김질하며 우리를 구경하고 있었습니다.

부랴부랴 카메라를 삼각대에 설치하기 시작하면서 끝까지 올라와서 촬영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때부터 산양이 일어서서 자리를 뜨는 모습까지 촬영하려고 거기서 세 시간동안 기다렸습니다. 결국 산양이 몸을 일으켰고, 시야에서 사라지는 산양을 촬영했어요. 그 산양이 왜 거기에 있었는지 알 수 없지만 꽤 의미심장한 장면이라 엔딩씬으로 넣었죠.

개인적으로 미술관에서 산양을 만나니 기분이 묘하고 또 기뻤습니다.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는 ‘등산’이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녹색연합 활동가로서는 굉장히 익숙한 장면들이 이어지더라고요. 가리왕산 파괴, 기후 위기로 인한 고산 침엽수의 멸종, 산불, 그리고 설악산 케이블카까지. ‘예술가가 이렇게까지 환경 문제에 파고든다고?’라고 생각할 정도였다니까요. 환경에 관해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작업의 방향을 설정한 계기가 있으신가요?

소개했다시피 조각을 전공했습니다. 덕분에 학생 때부터 다양한 재료를 다뤄볼 기회가 있었어요. 돌이나 나무, 금속 같은 원시적 재료부터 유리섬유나 실리콘, 아크릴이나 우레탄 같은 화학 재료까지 말이죠. 작품이 완성된 직후엔 수많은 폐기물이 쌓입니다. 조각만 그런 게 아니라 회화나 사진도 마찬가지였어요. 유화 작업을 하면 폐기름이 쌓이고 암실에서 현상과 인화를 하면 엄청난 화학 약품을 처리해야 해요. 작업을 할수록 지구에 빚을 지는 것 같았습니다.

작업실 안에서 개인이 느끼는 부채 의식이 있다면 그 너머로 미술계 전체가 직면한 환경 문제를 자연스럽게 볼 수 있게 됩니다. 미술관에서 전시를 한 번 할 때마다 목조 가벽을 모두 폐기하고, 새로운 벽을 만들어 하얗게 칠하고 새 현수막과 플래카드를 제작합니다. 그렇게 숱한 전시가 열리죠.

이런 시각으로 보면 오늘의 예술은 내일의 환경을 담보로 존재하는 거잖아요. 그래서 저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두 개였어요. 그런데도 미술사에 남을 작업을 해서 빚을 탕감하거나 직접 부채 의식을 투영해 환경을 주제로 다루거나. 이 작업에서 저는 후자를 택한 거고요.

내일의 환경을 담보로 존재하는 예술이라… 그렇다면 예술과 환경이 어떻게 만나면 좋을까요?

사실 예술가나 예술계 그리고 그 사이 어디에 있는 예술 산업은 친환경과 반대편에 있습니다. 어떤 영화는 시리즈를 계속 만들어 오면서 무려 1,500대에 달하는 멀쩡한 자동차를 폭파했습니다. 물론 그 영화가 예술이냐 아니냐를 떠나서요. 제가 제 작업으로 기후 위기를 이야기한다고 하더라도 누군가에겐 이게 그린워싱으로 읽힐 수도 있죠. 그래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앞서 언급했던 부채 의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그 부채 의식 하나가 예술의 시야를 확장하거나 시각을 바꿀 수 있게 되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작가들은 물론이고 미술관의 학예사들을 비롯해 예술을 기획하고 만드는 되도록 많은 사람과 녹색연합 같은 환경단체 활동가들이 가까워져야 한다고 봅니다. 환경이나 기후 위기는 최근 예술계가 자주 그리고 많이 다루는 주제 중 하나인데, 이런 주제를 기계적으로 한 번쯤 다뤄보는 것만으로는 결코 진정성을 획득할 수 없잖아요. 그거야말로 하나의 주제를 유행으로 쓴 후 소각하는 것과 마찬가지니까 말이죠.

전시뿐만 아니라 예술과 환경이 만나는 계기를 더 다양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미술관은 활동가가 주도하는 세미나를 개최하고, 활동가와 작가가 만날 기회를 제공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시민으로서의 예술인을 활동가가 만나는 것이 시민단체의 역할이듯 관객이자 연구자로서의 활동가를 예술인과 연결하는 것이 국공립 미술관의 역할이니까요.

최근에는 녹색연합이 기획한 <극한날씨 영화제>에도 함께 참여해 주셨는데요. 작가님 작품인 ‘진경산수’외에도 ‘석탄의 일생’과 ‘30km’라는 녹색연합이 만든 다큐 상영회 때에도 빠지지 않고 참석해주셨습니다. 어떠셨는지 후기를 조금 들어보고 싶습니다.

물론 서울환경영화제나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같은 영화제에 기후 위기나 난개발로 훼손되는 생태계를 다루는 많은영화가 매년 소개됩니다만 녹색연합이 기획한 <극한날씨 영화제>가 특별했던 지점은 세 편의 다큐멘터리 모두 녹색연합 활동가들의 현장 활동으로 탄생한 다큐멘터리라는 점이죠. 이 기획은 녹색연합의 현장 중심적 특성을 고스란히 보여줬는데, 녹색연합이 한 해동안 만들어 내는 기록 영상들이 엄청나게 많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됐어요. 저는 이 <극한날씨 영화제>가 녹색연합을 시민에게 소개하고, 활동에 동참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꽤 멋진 프로그램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녹색연합이 매년 주최하는 녹색 순례를 잘 찍고 편집한다면 그 자체로 환경 다큐멘터리고, 조류 충돌 방지를 위한 새친구 활동을 기록한다면 그 자체로 다큐멘터리고, 후원 회원 유치를 하는 활동가들을 담아내면 그 자체로 새로운 환경 다큐멘터리가 되겠죠. 저는 이런 녹색연합의 많은 활동을 기록한 영상들이 유튜브에만 업로드될 게 아니라 영화제라는 다소 거창한 이름을 붙여 매년 오프라인으로 상영해 시민들과 만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온라인 플랫폼에 업로드한 영상은 오히려 휘발될 수 있지만 현장에서 활동가가 직접 영화를 소개하고 뒷이야기를 나누는 행사는 다른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이번 <극한날씨 영화제>를 통해 확인했습니다. 제가 참여해서가 아니라, 파일럿으로 끝내기엔 너무나도 의미 있는 기획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녹색희망> 구독자분들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신가요?

1969년, 스위스 베른의 쿤스트할레 베른에서 기념비적 전시가 열렸습니다. 이 전시의 제목은 <태도가 형식이 될 때>였습니다. 당대의 미술사에서 탄탄한 영향력을 발휘하던 이론적 맥락에서 벗어나 예술 작품을 이루는 본질적 요소가 무엇인지를 묻는 이 전시에서 기획자와 작가들은 예술을 다루는 태도 자체에서 답을 찾으려는 다양한 시도를 했습니다. 이 전시는 작업실-미술관-갤러리가 이루고 있던 상징의 삼각 편대를 뒤흔들었습니다. 이후로 수많은 예술가에 의해 대안 예술이 시도됐고 실제로 태도는 예술의 중요한 형식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녹색희망>의 구독자는 녹색연합과 함께 기후 위기에 앞장서는 태도로 살아가고 있는 녹색연합의 든든한 외부 활동가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우리의 태도가 하나의 형식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오늘 우리 사회를 설명하듯 쏟아지는 플라스틱과 후쿠시마 오염수의 해양 방류 사이를 가로지르며 단단하고 맹렬한 기세로 영향력을 발휘하는 이 세계의 논리 앞에서 우리의 태도가 본질적 질문을 던지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지켜야 할 본질이 무엇인지를 묻는 태도는 자본과 정치와 시스템이 이루는 삼각 편대를 뒤흔들 것입니다. 그리고 이 태도는 삶과 사회의 중요한 형식이 될 것입니다. 태도가 형식이 될 때까지 녹색연합과 함께합시다.

 

인터뷰 정리 : 배선영 이음팀


‘그린 파트너스’에서는 녹색연합의 가치에 동의하며 다양한 방식으로 협력하고 있는 분들을 인터뷰하여 이야기를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