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한강은 노벨문학상을 수상 직후, 기자회견이나 잔치 같은 수상 행사를 하지 않겠다며 “전쟁이 치열해서 날마다 죽음들이 실려 나가는데 무슨 잔치”냐 했다죠. ‘세계는 지금 전쟁 중’이라는 한강 작가의 감각에 여러 전쟁 뉴스에도, 한반도에서 벌어지고있는 갈등 상황에도 무감해지던 우리를 다시 돌아보게 됩니다.
세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무력 충돌 상황을 기록하는 비영리단체인 🔗ACLED(Armed Conflict Location & Event Data)에 따르면 2024년 지금, 세계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어느 때보다 무력 충돌이 많은 시대입니다. 국가 간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곳은 물론, 국가 안에서도 무장세력 간의 충돌로 지속적인 분쟁을 겪고 있는 나라들이 50여 개국 있습니다. ACLED는 세계인 7명 중 1명이 이런 폭력적인 상황에 노출되어 있으며, 현재 가장 심각한 곳을 ‘팔레스타인’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는 11월 6일은 무감한 우리를 다시 깨우는 유엔이 정한 ‘전쟁과 무력 충돌의 환경 착취 국제 예방의 날(International Day for Preventing the Exploitation of the Environment in War and Armed Conflict)입니다. 전쟁으로 파괴되는 것은 사람이나 도시뿐만 아니라 생태계 전부입니다.
2022년 2월 이후 지금까지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우크라이나에선 폭격이나 군용차량 이동 등으로 보호구역 3만㎢가 파괴되었습니다. 국립공원의 16%는 불탔고 보호구역을 돌보던 사람들도 없고 장비도 파괴되었습니다. 러시아의 공습으로 파괴된 비료공장, 설탕공장 등에서 누출된 화학물질이 강으로 흘러들어 강이 오염되어 식수는 물론 물고기 한 마리 살지 못하는 곳으로 바뀌었습니다. 군사 활동은 새로운 온실가스 배출구로도 지목되고 있습니다. 전쟁에 동원되는 모든 무기가 막대한 화석연료를 소모하며 탄소를 배출합니다. 영국의 시민단체 🔗‘분쟁과 환경관측소(Conflict and Environment Observatory)’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군대가 배출하는 온실가스 비중은 전체 배출량의 5.5%에 이릅니다. 전 세계 군대를 한 나라로 본다면, 중국과 미국, 인도에 이어 네 번째로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하는 나라로 볼 수 있습니다.
1950년과 2000년 사이에 무력 충돌이 일어난 지역의 80% 이상은 생물다양성이 풍부하고 멸종위기 야생동식물이 서식하는 ‘핫스팟’ 지역이었습니다. 이런 지역이 무력 상황에 놓이면 무기 전급이 쉬워지고, 정부의 관리·감독 기능이 약화되며 야생동물 사냥이나 불법 벌목도 더 성행한다고 합니다.
이런 까닭에 10월 21일부터 11월 1일까지 콜롬비아에서 열리고 있는 생물다양성협약 당사국 총회에서 많은 환경단체들이 이제 무력 충돌로 인한 생태계 파괴 문제를 생물다양성 협약의 의제로 다룰 것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글. 정명희 녹색연합 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