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4월 24일 오전 9시,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의 외곽 사바르에 위치한 8층짜리 건물 라나 플라자가 90초 만에 종이로 만든 집처럼 처참하게 붕괴했습니다.
며칠 전부터 붕괴 조짐이 보였던 라나 플라자는 이날 폐쇄조치가 내려져 1층부터 4층까지 상업시설엔 모두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5층부터 8층까지엔 출근하지 않으면 월급을 주지 않겠다는 협박에 어쩔 수 없이 나와 일하던 의류공장 라나꼴의 노동자 5천여 명이 있었습니다. 순식간에 무너진 건물에 노동자 1천1백 명 이상이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고 2천여 명 이상이 큰 부상을 입었습니다. 건물에 깔린 노동자들은 팔다리를 잘라내고 구조될 수 있었습니다.
라나 꼴은 베네통, 자라, 프라이마크 같은 글로벌 패션 브랜드 30여 곳의 옷을 만드는 하청공장이었습니다. 방글라데시는 2000년대 이후 중국 다음으로 손꼽는 의류 생산국이 되었고, 의류산업은 방글라데시 전체 수출의 80%를 차지하며 노동인구 절반이 일하는 분야입니다. 이런 성장 배경엔 최소한의 기준도 없이 열악한 환경 속에서 저임금으로 일하는 노동자들이 있었습니다. 라나 플라자는 원래 4층 건물이었지만 일감이 늘어나자, 건물을 8층까지 불법 증축했고 9층을 또 만들던 상황이었습니다. 건물이 위험하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노동자들은 두려움을 안고 일을 해야만 했습니다.
라나 플라자 붕괴 사고는 전 세계 패션 브랜드의 민낯을 보여줬습니다.
화려한 광고 뒤에 가려져 보이지 않던 ‘메이드인방글라데시’라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내가 입는 옷이 먼 나라 누군가의 안전과 건강을 희생으로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을 전 세계가 깨닫는 사건이었습니다. 글로벌 의류회사들이 자사의 옷이 어떤 환경에서 만들어지는 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었다는 사실에 많은 이들이 분노했습니다.
방글라데시의 노동, 환경단체들은 의류산업 노동자들의 저임금과 위험한 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법을 만들었습니다. 국제적인 비영리단체 클린클로스캠페인(🔗cleanclothes.org)은 라나꼴에 하청을 준 글로벌 회사들이 이 사고에 책임을 지고 피해자 보상을 하는 ‘라나플라자 협정’을 만들었습니다. 사고 1년 뒤, 글로벌 패션산업의 환경, 윤리 문제를 감시하기 위해 결성된 단체 ‘패션레볼루션’은 패션브랜드의 투명성 지수를 공개하고 있습니다. 패션레볼류션은 해마다 라나플라자 사고가 있었던 4월 24일 주간을 패션혁명주간으로 두고 패션산업에 관한 여러 캠페인을 벌입니다.
지금 우리가 입고 있는 옷은 대부분 해외에서 만들어 집니다. 내가 사는 브랜드들이 해외의 제조공정까지 책임지고 있는 기업인지 확인해 봐야 합니다. 해마다 1,000억 벌 이상의 옷이 생산되고 30% 이상이 그해에 바로 폐기된다고 합니다. 이렇게 많은 옷을 생산하고 버리는 구조가 계속된다면 제2의, 제3의 라나플라자 사고가 또 반복될 수 있습니다. 옷을 덜 사 입는 것, 오래오래 입는 것, 서로 바꿔입고 물려 입는 것, 패스트패션이 아니라 슬로우 패션으로 나아가야 이런 비극을 막을 수 있습니다.
*패션레볼류션 코리아(인스타그램 @fashionrev_south_korea) : 2023년 패션투명성 지수 한글판을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