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11월 10일 반달가슴곰

1998년 11월 10일, 반달가슴곰 발자국을 공개하다

1998년 11월 10일 모든 신문에 전날 녹색연합이 공개한 한 장의 사진이 실렸다.

화재를 일으킨 사진이 다소 흐릿하다. 당시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곰으로 추정했으나 곰이 아닌 것 같다는 의견도 제기되었다.

눈 위에 찍힌 선명한 길이 15cm의 야생동물의 발자국과 크기를 비교하기 위해 옆에 놓아 둔 목장갑 한 짝. 눈 위에 발톱까지 선명하게 찍힌 발자국의 주인공인 바로 반달가슴곰. 그리고 이 사진이 촬영된 곳은 백두대간의 강원도 지역.

당시는 호랑이나 표범처럼 이미 멸종된 것으로 생각했던 반달가슴곰의 흔적이 지리산 일대에서 발견되며 반달가슴곰 복원이 막 시작되던 때였다. 그런데 지리산에 이어 강원도에서도 반달가슴곰의 흔적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은 한반도에서 야생동물의 안녕을 걱정하던 모든 이들을 가슴 뛰게 하는 반가운 소식이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론 직업 밀렵꾼이 놓은 덫과 올무가 숲 곳곳에서 쉽게 발견되던 당시라 밀렵꾼을 불러 모으게 하는 결과를 낳지 않을까 걱정도 들게 하는 소식이었다. 당시 녹색연합은 겨울철마다 강원도 일대에서 밀렵도구를 수거해 왔는데 며칠 만에 3~400여개를 수거할 정도였다. 녹색연합도 이런 걱정 때문에 그 해 4월에 반달가슴곰 발자국을 발견했지만 공개하지 않고 반달가슴곰의 실체를 확인하기 위한 조사를 수개월 이어오고 있던 터였다.

그런데 갑자기 사진을 공개한 것은 당시 강원도와 산림청이 겨울철 한시적으로 사냥을 허가해주는 순환수렵장소에 반달가슴곰 발자국을 확인한 장소가 포함되어 자칫 사냥꾼들의 총에 반달가슴곰이 희생될 수도 있는 상황이 벌어졌기 때문이었다. 당시 순환수렵장소로 지정된 곳은 강원도 백두대간 전 지역이 포함되어 있어 반달가슴곰 뿐만 아니라 모든 야생동물들의 생존이 위협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백두대간 보호법이 아직 없던 시절이라 국립공원이 아니면 어느 지역이든 사냥터가 될 수 있던 상황이었다. 녹색연합의 반달가슴곰 발자국 사진은 이후 정부의 순환수렵지역, 밀렵대책, 야생동물 조사나 보호대책의 부실함에 대한 지적으로 이어지며 야생동물에 대한 사회적인 관심을 크게 불러 일으켰다.

몇 해 전 해당 발자국에 대해 반달가슴곰이 아닌 다른 야생동물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그럼에도 이후에 백두대간 강원권에서 반달가슴곰 목격담은 꾸준히 이어졌다. 당시 흔적을 남겼던 그 반달가슴곰이 백두대간의 깊은 숲 속에서 오래오래 살아남았었기를.

[글 : 정명희 녹색연합 전문위원]

<시간여행>은 과거로 거슬러가 언젠가 벌어졌던 환경문제를 다시 살펴봅니다. 어떤 문제는 해결되었고, 어떤 문제는 여전히 풀리지 않았습니다. 그때와 지금 무엇이 달라졌는지 함께 차근차근 살펴나가보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