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으로 뒤덮인 태안을 다시 살린 시민들
몇 년 전만 해도 기억하고 있는 가장 큰 환경뉴스가 뭐냐, 어떤 일 때문에 환경문제에 관심 갖게 되었냐는 질문을 하면 꽤 많은 이들이 ‘태안 기름유출사고’를 말했었다. 당시 태안에 자원봉사를 하러 갔었다는 이야기하는 이들도 많았다. 벌써 14년이 흐른 일이다. 피해를 당한 지역의 이름보단 사고를 일으킨 당사자들을 부르는 것이 더 올바르다. 그래서 다시 말하자면, 2007년 12월 7일 발생한 삼성1호 – 허베이 스피리트호 기름유출사고.
역대 최고의 기름유출사고
2007년 12월 7일 아침 7시, 풍랑주의가 내린 충남 앞 바다에서 이동 중이던 삼성중공업 소유의 크레인이 예인선과의 연결이 끊어지며 입항 대기중이던 14만6천 톤 규모의 유조선 허베이 스피리트호와 충돌했다. 이 충돌로 유조선에 세 개의 구멍이 뚫려 기름이 바다로 흘러들어가기 시작했다. 이 구멍은 이틀이 지나서야 막혔는데 그 사이 1만9백 톤의 기름이 바다로 쏟아졌다. 95년 여수 앞바다에서 발생했던 씨프린스호 기름유출사고의 두 배가 넘는, 역대 최고의 기름유출사고였다. 당시 대형유조선들은 선체를 이중으로 만들어 만일의 사고에 대비해야 했으나, 몇 년간의 유예기간을 빌미로 여전히 우리나라에 기름을 실어 나르는 유조선들의 80%는 단일 선체형태였다. 지름 30센티에서 1미터 정도의 구멍 세 개에서 이렇게 많은 기름이 흘러나온 배경이다.
기름으로 초토화된 바다, 죽어가는 생물들과 주민들
사고 직후 정부는 차가운 겨울바다라 원유가 응고되어 해안선까지 빨리 오지 않을 거라고 예상했지만, 녹색연합 활동가들이 7일 오후 현장에 도착했을 때 이미 학암포, 구례포, 신두리, 천리포, 만리포, 모항 등 태안군 서해안 전 해역이 기름으로 초토화된 현장을 목격했다. 말 그대로 서해안이 시커먼 기름에 뒤덮이고, 멀리 제주도에서까지 타르덩어리가 발견되는 등 남해안까지 오염이 확산되었다. 하루 아침에 주민들은 생계를 잃어야 했고 태안을 찾은 겨울철새들은 물론 바다의 모든 생물들은 기름에 뒤덮여 죽어갔다.
그리고 14년이 흘렀다. 당시의 예상대로라면 수십년이 흘러도 다시 회복되지 못할 줄 알았던 태안 바닷가에 더 이상 사고흔적은 남아있지 않다. 2016년 1월엔 세계자연보전연맹이 태안해양국립공원의 보호지역 등급을 상향 조정하기도 했다. 태안기름유출사고보다는 만리포 해수욕장, 신두리 사구로 태안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고 있다. 이런 놀라운 회복은 바로 시민들 덕분이었다.
수많은 회복의 과정
2007년 12월부터 이듬해 봄까지 태안 바닷가의 기름띠를 제거하기 위해 그 추운 날씨에도 시민들은 자비로 방제복을 구해 입고 태안으로 향했다. 바닷가의 돌멩이, 바위 틈에 낀 기름덩어리를 걸레로 부직포로 닦아내는 작업을 종일 했다. 녹색연합에서도 주말마다 자원봉사자를 태운 단체버스 수십 대를 운영했었다. 환경단체 뿐만 아니라 전국의 모든 모임과 단체들이 태안 자원봉사단을 운영했다. 그렇게 모인 시민 자원봉사단이 124만 명이 넘었다고 한다. 바다를 다시 살린 시민들, 사람이 희망임을 새삼 확인하는 그때의 사건, 그러나 다시 되풀이되어선 안 될 사건이다.
[글 : 정명희 녹색연합 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