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12월 31일, ‘백두대간보호법’ 제정

2003년 12월 31일, ‘백두대간보호에 관한 법률’ 제정

 

1997년 ‘백두대간 환경대탐사’

 

2003년 12월 31일 백두대간보호법 제정

 

2003년 12월 31일 ‘백두대간보호에 관한 법률(이하 백두대간보호법)’이 드디어 제정되었습니다.
지금은 너무나도 익숙한 단어인 ‘백두대간’이 당시만 하더라도 여전히 낯선 개념이었던 시절, 백두대간을 실체로 인정하는 보호법이 만들어진 것은 백두대간보호활동을 펼쳐온 녹색연합을 비롯한 환경단체들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백두대간’은 소수의 산악인이나 향토사학자들 사이에서나 쓰이는 말이었습니다. 옛날 우리 조상들은 한반도 지리를 백두산부터 지리산까지 이어지는 하나의 산줄기인 백두대간과 거기에서 뻗어나가는 정맥이 강으로 갈라지는 방식으로 체계화했습니다. 이 체계로 조선시대 영조 때 지도 ‘산경표’가 만들어졌고 김정호의 대동여지도도 만들어졌습니다. 그런데 일제 강점기 때 일제가 한반도의 자원을 뺏어가기 위해 조사한 자료로 만든 산맥 개념의 지리 체계가 사용되면서 백두대간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졌습니다.

 

오대산국립공원 두로봉에서 발견된 원시림의 흔적

 

 

녹색연합은 1996년부터 여러 차례 백두대간 환경대탐사를 진행하며 백두대간을 기준으로 사람들이 터를 잡고 동식물의 서식지도 펼쳐져 있음을 확인하고 백두대간이 한반도 자연생태계 보존을 위한 가장 핵심구역임을 강조해 왔습니다. 원래는 하나로 이어져 있던 산줄기가 도로나 철도로 끊어져 있고, 광산, 목장 등으로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음을 알리며 백두대간 보호운동을 시작했고, 잊힌 백두대간이라는 말과 개념을 되살리고 학생들이 태백산맥뿐만 아니라 백두대간도 배우도록, 교과서에 싣자는 운동도 펼쳤습니다. 또한 백두대간을 체계적으로 보전하고 관리하기 위해선 반드시 보호법이 필요하기 때문에 백두대간보호법 제정운동을 하였습니다.

 

1999년부터 국회의원들이 발의한 백두대간 보호법이 몇 차례 있었으나 제대로 논의조차 되지 못하고 폐기되다 2002년 환경부와 산림청이 각각 법률을 국회에 제출하였고 이후 정부 합의안이 만들어지고 2003년 그해의 마지막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며 법이 만들어졌습니다. 이후 시행령과 시행규칙을 만들어 2005년 1월 1일부터 백두대간보호법이 시행됩니다.

 

2005년 9월 9일에는 우리나라 국토의 2.6%, 전체 산림의 4%를 차지하는 26만 3천 ha가 백두대간 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법적으로 보호 받게 되었습니다. 애초 산림청이 제시했던 백두대간 보호구역은 54만 ha였습니다. 보호구역이 이렇게 줄어든 것은 백두대간 보호구역에 포함되는 전국의 지자체들이 일제히 법을 반대하고 나섰기 때문입니다. 각종 홍보와 행사에는 늘 백두대간의 고장임을 내세우지만 정작 백두대간 보호는 안중에도 없는 지자체들은 보호구역에서 지자체 관할 구역을 제외해달라 요청하고 지역의 국회의원들까지 합세해 법 시행 반대운동을 하고 각 정부 부처 역시 백두대간 내의 행위 제한을 완화해 달라고 요구합니다. 특히 보호법 적용 구간의 약 40%가 있는 강원도는 도가 추진하려는 대규모 개발사업에 차질을 빚는다고 반발하며 주민들을 동원해 대규모 시위를 벌이기도 합니다.

 

백두대간보호법은 보호구역 내 각종 개발행위가 금지되지만 도로나 철도 같은 국책사업이나 일정 조건의 광산개발, 에너지사업 등이 가능하게 해 백두대간을 보호하기에 그 자체로 충분한 법은 아니었습니다. 이 법마저도 백두대간을 지키려는 사람의 의지와 행동이 반영되지 않으면 법은 그냥 문서에 불과하기 때문에 백두대간을 지키려는 노력은 이후에도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