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3월 16일 낙동강 페놀 유출 사건

1991년 3월 16일 토요일 아침. 대구에선 사람들이 수돗물에서 나는 지독한 악취 때문에 밥을 짓지도, 세수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정수장에 문의했더니 수돗물엔 이상이 없다는 답만 돌아왔다. 하지만 물을 마신 사람들은 두통, 복통, 구토, 설사, 목이 타는 듯한 갈증에 시달렸고 물로 만든 음식에서까지 악취가 났다. 조사에 나선 대구시가 수돗물에 발암물질인 ‘페놀’ 성분이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리고 페놀이 낙동강 상류 구미에 있는 두산전자 공장에서 유출되었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3월 14일 밤, 페놀 운반 파이프에 구멍이 생겨 페놀이 낙동강으로 이어진 옥계천으로 흘러들어갔고 이렇게 오염된 물은 하루 지나 낙동강 취수장에서 소독을 위해 부어진 염소와 화학반응을 일으켜 클로로 페놀로 변해 더 심한 악취가 나게 된 것이다.

두산전자는 페놀 유출 사실을 확인했지만, 관계 기관에 알리지 않았고 정수장에선 악취가 나는 상황에서도, 시민들의 문의가 쏟아지는 상황에서도 별다른 조사를 하지 않았다. 대구시는 페놀 유출을 확인했지만, 시민들에게 유해하지는 않다고 말하며 정확한 피해 상황을 파악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두산전자는 이 사고로 한 달 동안 조업정지를 당했지만, 고의가 아닌 사고라고 항변하여 15일 만에 다시 조업을 재개했는데 이후 보름이 안 되어 또다시 페놀 2톤이 유출되어 대구 전역 식수 공급이 중단되었다. 사고를 일으키고도 감추려 했고, 수습하기도 전에 공장을 돌리는 데 급급했던 기업이나 이를 승인해 준 정부의 태도에 시민들의 항의와 분노는 대구를 넘어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당장 기업의 불매운동이 시작되었다. 당시 두산 그룹의 계열사인 두산식품은 OB맥주를 생산하고 환타, 코카콜라 등 음료를 수입해 유통하던 곳이었는데 전국의 슈퍼마켓들이 OB맥주와 코카콜라 판매를 중단하겠다고 나섰고 대학가에서도 불매선언에 나섰다. 순식간에 두산식품의 매출이 20%가량 낮아져 불매운동의 무서운 영향력이 확인되었다. 결국 두산 그룹은 회장이 이 사태에 책임을 지고 회장직에서 물러났고, 환경처 장·차관이 모두 해임되었다. 두산전자 임직원과 관련 부처 공무원 15명이 구속되었고, 두산전자는 수십억의 피해배상을 해야 했다.심각한 문제를 일으킨 사건이었지만, 분노한 시민들의 끈질긴 행동으로 많은 변화가 일어나기도 했다. ‘환경 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별조치법’, ‘환경개선 비용 부담금법’이 제정되었고 중앙환경분쟁조정위원회가 만들어졌고, 상수도 수질개선 종합대책이 마련되었다.

당시 상황 뉴스로 보기

[글 : 정명희 녹색연합 전문위원]

<시간여행>은 과거로 거슬러가 언젠가 벌어졌던 환경문제를 다시 살펴봅니다. 어떤 문제는 해결되었고, 어떤 문제는 여전히 풀리지 않았습니다. 그때와 지금 무엇이 달라졌는지 함께 차근차근 살펴나가보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