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6월 5일 ‘동강 댐 백지화’ 선언
6월 5일은 UN이 정한 환경의 날입니다. UN은 1972년 6월 5일 스톡홀롬에 유엔환경계획(UNEP)을 설치하고 이 날을 환경의 날로 정해 기념하고 있습니다. 유엔이 정한 무슨 날이 대개 그렇듯이 정부가 주최하는 기념행사도 열리고 환경을 위해 애쓴 이들에게 포상도 합니다. 2000년 6월 5일 환경의 날은 이런 연례적인 행사와는 다른 특별한 일이 있었습니다. 대개 국무총리나 환경부 장관만 참석하는 환경의 날 기념식에 2000년 6월 5일엔 대통령이 참석했습니다. 대통령이 참석한다는 것 만으로도 특별한 어떤 발표가 있을 거라는 기대를 할 만했죠.
댐 백지화 선언!
김대중 전 대통령은 이날 기념식에서 ‘영월 댐 건설 계획은 세계 최초의 신종으로 추정되는 7종의 동식물과 20여 종의 멸종위기 동·식물을 보호하고 생태계를 보전하기 위해 백지화하겠다, 동강 주변 지역은 자연친화적인 문화관광단지로 정비하고, 용수 부족과 홍수 예방 문제는 별도로 심도 있게 논의해 해결토록 하겠다’ 발표했습니다. ‘백지화’하겠다는 말이 나오자 행사장 가득 환호와 박수 소리가 퍼졌습니다. 1996년 2월 건설교통부가 홍수조절과 상수원 확보를 위해 강원도 영월 동강에 9,390억 원을 들여 6억 9,880만 톤의 다목적댐을 짓겠다던 ‘영월댐’ 계획은 그렇게 백지화되었습니다. 물론 백지화 발표는 그냥 이뤄진 것이 아니죠.
백지화 배경의 수많은 생명과 사람들
동강댐 예정지에 192개의 동굴이 있고 석회암 지대라 안전성에 문제가 있고 검독수리, 붉은 박쥐, 동강할미꽃 같은 희귀생물이 서식하고 있음을 밝혀낸 것도, 영월댐 대신 동강댐이라 부르며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도 주말마다 사람들을 모아 동강을 걸으며 이 아름다운 자연의 미래를 이야기하게 한 것도 모두 주민들과 환경단체들, 전문가들이 힘을 합해 만든 아름다운 승리였습니다.
동강댐 백지화는 아무리 한번 결정된 국책 사업이라도 얼마든지 되돌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일이자, 일단 짓고 환경은 나중에 하는 식의 사후 대책 위주였던 정부의 환경정책을 근본적으로 흔드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당시 건설교통부 장관은 동강댐을 짓지 않으면 2005년부터 제한 급수를 시작해야 하고 물이 없어 아파트 건설도 공장 건설도 허가하기 힘들어진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물 부족을 이유로 대형 댐을 건설하는 것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던 관행도 동강댐을 계기로 사라졌습니다. 그렇게 사라질 줄 알았던 대형 댐 논란은 이명박 정부의 4대강 16개 보 설치로 다시 살아났지만요.
해마다 환경의 날이면 2000년 6월 5일처럼 환호성을 지르고 다 함께 기뻐할 만한 소식이 다시 있을까 생각합니다. 개발과 성장 논리에 갈수록 꼭꼭 묶여 버린 세상에서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게 얼마나 꿈같은 이야기인 줄 알면서도 여전히 환경과 생태를 돌보는 사람들, 우리가 있기에 이 꿈을 계속 꿉니다.
[글 : 정명희 녹색연합 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