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5월 31일 새만금 삼보일배 회향

 

“온 세상의 생명평화와 새만금 갯벌을 살리기 위한 삼보일배를 시작하겠습니다”
삼보일배 시작을 알리는 이 쩌렁쩌렁한 소리가 20년이 지난 지금도 귀에 남아 있다.

2003년, 그해 봄은 온통 ‘새만금’이었다.
국회의원과 해수부 장관 시절 새만금 간척사업을 반대해 왔던 이가 대통령이 되어 이제 새만금 간척사업을 다시 검토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는 “이미 들어간 돈이 너무 많다”는 새 대통령의 발언에 무너지기 시작했다.
2003년 아직 갯벌을 가로막는 물막이공사만 진행되고 있던 터라 지금이라도 멈추면 갯벌을 보존할 수 있고, 들어간 돈보다 더 많은 가치를 갯벌이 돌려줄 거라는 이야기는 새만금 사업을 멈추면 전라북도를 잃는다는 정치적 판단에 묻혀버렸다.

갯벌의 숱한 가치나 갯벌을 막으면 사라지게 될 무수한 생명을 한낱 정치적 이해관계와 겨루는 부끄러운 행태에 성직자들이 나섰다. 새만금에서 서울까지 수경 스님, 문규현 신부님, 이희운 목사님, 김경일 교무님 네 분이 세 걸음 걷고 한 번 절하며 우리의 탐(탐욕), 진(분노), 치(어리석음)을 참회하는 삼보일배를 시작한 것이다.
아직 바닷바람이 거셌던 3월 28일 전북 부안 해창갯벌에서 시작한 삼보일배는 서해안을 따라 올라오며 더위를 걱정해야 하는 5월에 접어들며 수도권에 들어섰다. 종일 걷고 절하는 이 고행의 행렬은 처음엔 수십 명에 불과했지만, 날이 갈수록 함께하는 이들이 늘어나 서울로 들어선 이후부터는 천여 명의 대행렬이 되었다. 처음엔 네 분만 삼보일배를 하고 다른 이들은 뒤따르기만 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모든 일행이 삼보일배를 했다. 천여 명의 행렬이 네 분 성직자를 뒤따르며 세 걸음 걷고 동시에 아스팔트에 이마를 맞대며 절을 하는 모습은 그 자체로 감동과 장관이었다. ‘생명평화’를 위해 기꺼이 길을 나선 이들이 이렇게 많다는 것 만으로도 위안과 위로였다.

2003년 5월 31일 2시 천여 명의 삼보일배 행렬이 서울 광장으로 들어섰다. 해창갯벌을 떠난 지 65일째, 321.3km의 여정을 마무리하는 자리였다. 바다의 날이기도 한 이날, 행렬을 맞이하는 커다란 현수막엔 ‘노무현 대통령의 새만금 사업 중단 결정 촉구대회 및 삼보일배단 맞이대회’라고 쓰여 있었다. 삼보일배 65일은 이미 새만금 간척사업은 돌이킬 수 없는 사업이라고 생각했던 이들에게 생명을 살리는 일은 어느 순간에도 결코 포기할 수 없다는 마음을 심어주게 한 시간이었다. 비록 65일 동안 새만금 간척사업에 대한 어떤 희소식도 들려오지 않았지만, 이미 삼보일배에서 시작한 ‘생명평화’가 결코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 되리라는 믿음을 갖게 해 준 시간이었다.

그로부터 20년 뒤, 여전히 새만금간척사업은 미완성이다. 아직도 갯벌을 막은 대신 약속한 그 어떤 장밋빛 미래도 이뤄지지 않았고, 내세울 만한 대표적인 사업도 없다. 그러나 새만금의 마지막 남은 갯벌 ‘수라갯벌’을 지키기 위한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삼보일배는 그렇게 계속 이어지고 있다.

[글 : 정명희 녹색연합 전문위원]

<시간여행>은 과거로 거슬러가 언젠가 벌어졌던 환경문제를 다시 살펴봅니다. 어떤 문제는 해결되었고, 어떤 문제는 여전히 풀리지 않았습니다. 그때와 지금 무엇이 달라졌는지 함께 차근차근 살펴나가보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