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4월 29일 노골프데이

벌써 십수 년 전 이야기다. 그땐 어느 개그맨이 골프광이라서 더 이상 좋아할 수가 없다는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이들이 제법 있었다. 당시엔 골프가 대표적인 사치였고 골프접대니, 골프 관광 같은 말이 사회악과 같은 말이었다. 드라마에서 재벌가와 정치인의 뒷거래가 이뤄지는 곳은 자주 골프장이었고, 어느 정치인은 수해가 났던 시간에 골프장에 있었던 게 드러나 자리에서 물러나기도 했다.

2023년 오늘에도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2022년 발간된 레저백서는 우리나라 골프 인구를 564만 명으로 집계했다. 이는 2019년보다 무려 94만 명이나 늘어난 숫자다. 우리나라 20세 이상 인구 약 4,320만 명 중 13%나 골프 인구인 셈이다. 진짜 골프가 대중스포츠가 된 것인가? 2022년에만 전국 514개 골프장 총내장객이 5,058만 명((사)한국골프장경영협회 발표)이라고 한다. 이 숫자가 반영하듯 2018년에 10%대에 머물던 골프장의 영업이익이 지난해엔 40% 가까이 올랐다. 한 해 동안 국립공원 탐방객 수가 35,901,970명(2021년 기준, 국립공원관리공단 발표)인데, 골프장 가는 이들이 국립공원 탐방객보다 더 많다는 데 어리둥절해진다.

이 배경엔 코로나19 상황이 있다. 사회적 격리 기간이 길어지고 해외이동이 쉽지 않던 시기에 넓디넓은 잔디밭에서 멀찌감치 떨어져서 즐기는 ‘골프’가 갑자기 부각되기 시작했다. 가까운 공원조차 찾기 힘들 이들이 있고 격리 상황에서도 궂은일을 해야 하는 사람들 틈에서 ‘골프장’을 발견하는 사람들이라니, 씁쓸하다가도 온갖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골프가 대세고 내 지인들의 SNS 게시물에도 골프인증이 올라오는 걸 보면 세상이 한참 바뀌었다는 걸 실감한다. 그 인증을 보고 불편한 속내를 드러냈다간 프로불편러가 될 것만 같다. 이렇게나 다들 좋아하는 골프인데, 그냥 인정해야 하나? 아니, 골프는 모르겠는데 아무래도 그 ‘골프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

대대로 살아오던 마을이, 조상들이 묻힌 선산이, 하늘다람쥐가 날던 산이, 사시사철 맑은 물과 공기를 내어주던 산이 처참히 사라지고, 마을주민들이 찬성과 반대로 철천지원수가 되어 갈라서고, 고향을 지키려는 윗세대와 팔려는 아랫세대가 반목하던 모습은 골프장이 들어선 모든 곳마다 한결같이 반복되었던 일이다. 그런 숱한 갈등과 상처와 파괴 더미 속에서, 멀쩡했던 숲을 베어내고 사람들을 쫓아내고 지어진 전국의 모든 골프장을 어떻게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알고 있나요? 골프장은 농약투성이


가끔 농약을 사용하지 않고 지역 주민들을 고용해 잡초를 뽑고 병충해를 예방하는 골프장이 소개되기도 하니까, 2023년엔 아마 많은 골프장이 그런 ‘친환경골프장’일 거라고 착각하는 것 같은데 사실은 이렇다. 환경부가 운영하는 토양 지하수 정보시스템에선 ‘골프장 농약 정보’를 계속 공개하는데 이 자료에 따르면 2010년엔 골프장 396곳(35,900ha)에서 115.8톤의 농약을 사용했는데 2020년엔 541곳(50,500ha)에서 202.1톤을 사용했다. 10년 동안 골프장이 37% 증가하는 사이 농약사용은 75%나 증가했다는 이야기다. 농약의 종류도 살충제, 제초제, 살균제 등 286가지나 된다. 잔디를 관리하기 위해 농약을 뿌렸어도 씻겨 나가면 괜찮지 않을까? 그래서 환경부에선 잔류농약 검사도 하는데 2020년에만 전체 골프장의 90%인 487개 골프장에서 잔류농약이 검출되었다. 잔류농약이 있어도 기준치 이하면 괜찮지 않을까? 참고로 국내엔 골프장 잔류농약에 대한 기준치가 없다.

 

또 다른 문제, 골프장과 물

골프장의 그 넓은 잔디밭을 만들려면 ‘물’이 필요하다. 전국 곳곳에서 봄 가뭄으로 물이 부족하다는 소식이 들리는데, 골프장이 물이 부족해 운영을 못 한다는 소식을 아직 듣지 못했다. 지난해엔 농작물은 물이 없어 누렇게 말라 죽어가는데 인근의 골프장 잔디는 생생한, 이상한 일이 알고 보니 농어촌공사가 농업용수를 골프장에 판매해 원성을 산 일이 있었다. 프랑스에선 가뭄으로 식수 공급이 제대로 안 되는 지자체가 100곳이 넘는데 골프장만 예외가 되자, 기후 활동가들이 골프장의 홀을 시멘트로 메우는 항의를 벌였다. 미국 골프 협회(GCSAA)의 통계에 따르면 골프장은 매일 물 1억 7,300만L를 사용하고 있으며, 이는 약 58만 명이 하루 동안 사용할 수 있는 양이다(뉴스펭귄기사 인용). 봄 가뭄으로 산불경보가 일상인 기후 위기 시대에 골프, 골프장은 지속 가능할까?

4월 29일은 ‘노골프데이’다. 태국,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 등 아시아 곳곳의 아름답던 자연이 골프 리조트로 개발되면서 삶터를 잃은 이들이, 야생동식물의 서식지였던 자연을 지키려던 이들이 태국에 모여 1992년에 만든 날이다. 30년 지난 지금. 골프장 딸린 리조트가 하나의 휴양문화로 자리 잡고 골프가 ‘대중’적이다라고 말하는 세상이지만, 여전히 골프장을 반대하며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는 이들이 전국에, 전 세계에 있다는 걸 잊지 않기 위해 나는 계속 계속 ‘노골프’다.

최병수 화백의 1996년도 작품 <골프공화국>

[글 : 정명희 녹색연합 전문위원]

<시간여행>은 과거로 거슬러가 언젠가 벌어졌던 환경문제를 다시 살펴봅니다. 어떤 문제는 해결되었고, 어떤 문제는 여전히 풀리지 않았습니다. 그때와 지금 무엇이 달라졌는지 함께 차근차근 살펴나가보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