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일본이 주축이 되어 싸우던 태평양전쟁이 아직 끝나지 않은 1945년 8월 6일 아침 8시 15분, 미군은 일본 히로시마 시내 상공 580미터 지점에서 원자폭탄을 투하했습니다. 인류가 만든 최악의 살상무기가 실험이 아닌 실전에서 민간인을 대상으로 최초로 사용된 순간이었습니다. 원자폭탄은 폭발하면서 5,500도의 열폭풍을 일으키며 도시 전체로 뻗어나가 7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그 자리에서 죽었고 대부분 건물은 파괴되었습니다. 히로시마는 말 그대로 잿더미가 되어 버렸습니다. 3일 뒤 8월 9일 11시 1분, 이번엔 나가사키 상공 600미터 지점에서 또 한 번 원자폭탄이 투하되어 3만 5천여 명이 죽었습니다.
폭발에 겨우 살아남은 사람들에겐 또 다른 고통이 찾아왔습니다. 생존자 대부분이 원자폭탄이 내뿜은 방사능에 노출되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미국 트루먼 대통령은 일본을 향해 항복하지 않으면 ‘지구 역사상 전례가 없는 파괴의 비’를 맞을 거라고 공개적으로 경고했습니다. 원자폭탄이 터진 후 몇 시간 뒤 방사능낙진이 비에 섞여 떨어지기 시작하는데, 열기로 몸이 익어가던 이들은 이 ‘파괴의 비’를 맞고 마시며 피폭 상황에 더 노출되었습니다. 생존자들은 구토, 설사, 피부병, 백혈병이나 암 같은 각종 병에 시달리며 서서히 죽음에 이르게 되었고 무엇보다 다음 세대에게까지 피폭은 이어졌습니다.
일본 정부가 작성한 「원폭 사몰자 명부」에는 2021년 8월 기준 히로시마 32만 8,929명, 나가사키 18만 9,163명 모두 51만 8,092명이 두 번의 핵폭탄 투하와 후유증으로 사망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도 당시의 생존자들과 후손들은 방사선 피폭의 무서운 후유증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원자폭탄의 방사선 피폭을 이렇게 겪은 일본인들에게 2011년 3월 11일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폭발과 방사선 피폭은 충분히 상상할 수 있는 고통이었기에 더 치명적이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지금 일본 정부는 태평양에 방사능 오염수를 버리겠다고 하고 있습니다. 세 번의 방사능 피폭이 전쟁과 사고로 겪은 피해였다면 오염수 방류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몇 차례나 방사선 피폭을 집단으로 겪은 나라가 얻은 교훈이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무책임한 가해 행위입니다.
해마다 8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열리는 원수폭금지 평화대회가 올해는 7월30일 후쿠시마에서 오염수의 해양 방출 반대를 시작으로 8월 9일까지 진행된다고 합니다. 일본 후쿠시마의 어민들과 원수폭금지일본국민회의, 후쿠시마현평화포럼, 일본 원자력자료 정보실 같은 일본 시민단체들은 방사능 오염수 방류를 계속 반대하고 있습니다.
이번 평화대회의 외침을 계기로 후쿠시마 어민과 시민의 목소리를 일본의 정책결정권자가 귀 기울이게 되길 바랍니다.
[글 : 정명희 녹색연합 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