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식지 보전 및 생명권 보장]

고라니. ‘내가 유해동물이라니’
자연, 동물을 보호해야 한다는 명제에는 다수의 시민이 무리 없이 동의합니다. 하지만 막상 “무엇을, 어떻게, 어디까지 보호할 것인가”라는 질문 앞에서는 쉽게 합의에 이르지 못합니다. 어떤 동물은 보호의 대상이 되고, 어떤 동물은 관리나 제거의 대상이 되는 현실은 그 사실 자체로 불편함을 남깁니다. <동물권 너머, 자연의 권리> 시리즈는 바로 그 불편함에서 출발해, 인간과 비인간의 관계를 새롭게 사유하려는 이론적 흐름을 붙잡으며 시작했습니다. 생태주의가 인간의 책임과 윤리를 강조해 왔다면, 인간 중심적 사고 자체에 질문을 던지며 비인간 존재를 공존의 주체로 다시 위치시키는 관점을 두루 살피고 싶었습니다. ‘자연의 권리’라는 다소 낯선 개념을 시민의 언어로 풀어내고, 인간과 자연을 가르는 익숙한 기준을 잠시 멈춰 세우는 자리를 만들고자 했습니다.

국가가 지정한 유해야생동물 목록을 홍보물에 넣었다 Ⓒ어라우드랩
2024년 진행한 〈동물권, 동물법 – 공존이 가능한 새로운 세계를 만나는 법〉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본격적으로 다룬 첫 번째 시도였습니다. 동물은 법적으로 여전히 물건과 유사한 위치에 놓여 있다는 현실, 동물권 소송과 입법 사례를 통해 보호의 언어와 실제 제도 사이의 간극을 분명히 확인했습니다. 인간과 동물을 구분해 온 근대적 사고방식 자체가 환경 문제와 갈등을 반복적으로 만들어 왔다는 점을 짚으며, ‘공존’이라는 말이 단순한 윤리적 수사가 아님을 강조했습니다.
2025년에는 이러한 논의를 보다 구체적인 현장으로 확장했습니다. 사육곰과 복원 반달가슴곰을 둘러싼 강연은 “왜 어떤 곰은 먹고, 어떤 곰은 보호하는가”라는 질문을 통해 생명의 가치가 제도 속에서 어떻게 다르게 평가되는지 드러냈습니다. 〈경계를 넘는 동물들 ― 보호와 제거 사이〉에서는 뉴트리아, 고라니, 너구리, 비둘기, 멧돼지 등 인간의 기준에서 ‘문제적’이라 불리는 동물들이 등장했습니다. 이들은 생태계 교란종이거나 유해야생동물로 호명되지만, 강연이 진행될수록 이러한 이름 붙이기가 얼마나 지극히 인간 중심적인지 공감하는 분들의 탄식이 가득했습니다. 동물 자체보다 인간 사회의 경계 설정이 문제의 핵심이겠지요. 도시의 확장, 농경지의 변화, 제도의 편의성이 동물을 자의든, 타의든 ‘경계를 넘은 존재’로 만들고, 그 결과 보호와 제거라는 극단적인 선택지만이 남게 됩니다. 이는 분명 우리의 선택과 책임의 문제임을 확인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현실적인 대안은 있는가” 질문이 쇄도했습니다. 이에 대해 연사들은 거대한 해결책보다 ‘응답의 태도’를 제안합니다. 비인간 존재를 일방적으로 보호하거나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인간 사회에 보내는 신호에 어떻게 응답할 것인가를 묻는 태도입니다. 제도와 정책, 그리고 시민의 감각이 함께 변화해야 가능한 접근임은 분명합니다.
‘동물권 너머, 자연의 권리’ 시리즈는 동물을 비롯한 자연의 권리를 이야기하면서, 동시에 인간 사회의 정치와 책임을 되묻는 자리였습니다. 자연을 보호의 대상에 머무르게 하지 않고, 함께 살아가는 존재로 상상할 수 있는 언어와 감각을 시민과 나누는 것이 이 기획의 가장 중요한 목표였습니다.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새롭게 사유하는 일은 단번에 완성될 수 없지만, 질문을 멈추지 않는 과정 자체가 변화의 시작이 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한 문장의 결론을 남기기보다, 각자의 자리에서 다시 질문을 이어갈 수 있는 씨앗을 남기고자 했는데, 지금쯤 각기 모양이 다른 작은 잎들이 피어났을까요.
본부 홍보팀 배선영 팀장
◊ 활동가 한마디
언제나처럼 여러 사람의 참여로 함께 만들어졌습니다. 연세대학교 문화인류학과 최명애 교수, 〈박멸의 공존〉 김아람 작가, 한국일보 고은경 기자, 생명다양성재단 김산하 대표를 비롯해 ‘동물권’을 넘어 ‘자연의 권리’에 관심을 갖고 질문의 여정을 함께 걸어주신 575명의 시민 여러분께 깊은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