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농부의 여름 수난기

의정부시 수락산 기슭에 위치한 텃밭. 이곳에서 활동가인 하밤(별칭)을 비롯한 스무여명의 도시 농부들은 퍼머컬처 방식으로 농사를 짓습니다. 퍼머컬처(permaculture)는 경운 하지 않고 다년생을 중심으로 식재 하며 땅을 살리는 농사 방식(agriculture)이자, 지속가능한 삶터를 만들기 위한 운동이자 문화(culture)입니다. 올해로 4년차, 이땅에서 농사를 지어온 이들에게 올해는 유독 수난의 연속이었습니다. 봄부터 끊이지 않고 고라니, 멧돼지가 찾아와 밭을 헤집어 놓고, 땅속에는 두더지가, 하우스 안에는 쥐까지! 동물 농장이 된 것으로도 모자라 일찍이 찾아온 더위와 쏟아지는 비, 폭염에 일하기도 정말 힘들었어요. 올해처럼 먹을 것도 안 나오고, 농사짓기 힘든 해는 처음이라고 모두가 혀를 내둘렀습니다. 

한창 폭염이 기승을 부리던 8월 초를 지나, 입추가 지나고 나니 확실히 더위가 한풀 꺾이는 느낌이에요. 이주에 한번 모이는 공동체 모임날, 쉬는시간을 틈타 유이, 지원, 그리고 하밤‘도시 농부의 여름 수난기’를 주제로 나눈 이야기를 공유합니다.  

하밤 : 오늘이 8월 20일인데, 그래도 좀 날씨가 시원해진 것 같지 않아요? 일할 때 바람도 살살 불고요. 

유이 : 글쎄. 아직 그렇게 시원해진 것 같진 않아요. 보통은 8월 15일 전후로 해서 바닷물도 다시 차가워진다고 하고, 예전에는 이때가 해수욕장 문닫는 시즌이거든요. 처서나 입추가 지나면 확실히 시원해지는 게 있었는데 요즘은 그런 절기도 잘 안 맞는 것 같아요. 

지원 : 절기는 요즘 진짜 안맞는 것 같아요. 5월 초에 모종 심을 때도 항상 늦서리가 왔잖아요. 절기에 따라 큰 날씨 패턴은 변하더라도 갑자기 따뜻해지거나 추워지거나 하고요.

하밤 : 5년 전인가, 저 처음 농사 배웠을 때 생각나는 게 청명에 씨를 뿌리고 나면, 곡우 때 일주일에 한번씩 비가 내린다고 했었는데 그 해는 그게 딱 맞았거든요. 근데 그 이후로는 맞는 걸 본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곡우 때 비가 와야 되는데 봄이 매번 가물었고. 

지원 : 올해는 특히 야생동물의 공격이 있어서 그런것도 있지만, 저는 올해 특히 기후변화에 취약한 게 1년생 작물이구나 알게 되었어요. 그래서 우리가 먹는 먹거리도 변하지 않으면 안되겠구나, 1년생 작물에만 길들여진 내 입맛을 제철에 나는 풀이나 나물에 좀 맞춰야겠다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실제로는 그 채소나 과일이 그때 나는게 아닌데, 그걸 연중 언제라도 먹을 수 있다는 게 사실 지속가능하지 않은 것 같달까요.

하밤 : 사실 다 엄청 무리를 해서 작물을 키우는 거잖아요. 우리 텃밭에 토마토는 비가 이렇게 오니까 매번 장마 때마다 문드러지는데, 대체 저 시중의 예쁜 토마토는 어떻게 나오는 걸까. 내가 텃밭에서 저렇게 키울 수 있나? 생각하면 결국 시중의 채소들을 키워내는 방식이 지속가능한 방식이 아닌거죠. 

지원 : 농사를 하면 할수록 비닐 하우스 농사는 정말 자연 착취적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 같아요.

유이 : 그렇게 키워낸게 결국 영양분도 별로 없고 질소를 과다하게 먹는 거죠. 저는 우리가 옛날부터 겨울에 묵나물을 먹었던 이유가 있었을 거라 생각하거든요. 영양적인 면도 실용적인 면에서도 그렇고… 저는 요즘 자연 식물식에 관심을 가지고 있어요. 최대한 자연 상태에서 나온 재료로 기름도 최소화해서 요리를 하는 거죠. 점점 1년생 작물 재배가 우리 밭에서 잘 안되니까, 풀 채취에 관심이 생겨서 묵나물로도 만들어보고, 장아찌로도 만들어 보고, 허브를 밥에도 넣어보고 하면서 다양하게 음식을 시도해보고 있어요.
*묵나물 : 묵은 나물, 말린나물이라고도 부르며 나물을 생으로 말리거나 삶아서 말려두었다가 나중에 조리하여 먹는 나물을 뜻한다. 

하밤 : 때마다 나는 것에 맞춰서 먹는 게 제일 좋은 것 같아요. 저는 농사 짓기 전에는 양파가 1년 내내 밭에서 나오는 줄 알았어요. 1년에 딱 한번 6월에 수확하는 걸 알고서 엄청 놀랐던 기억이 나요. 마트가면 항상 있으니까 밭에서 바로 오는 줄 알았죠. 

지원 : 우리가 진짜 제철 먹거리나 농사에 대한 감각이 없는 거죠. 제철에 나는 음식을 잘 먹는 방법들, 이런 음식을 경험하는 게 이제 진짜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하밤 : 저는 올해 봄에 개망초만 엄청 먹은 것 같아요.(웃음)

지원 : 보통 도시텃밭 하시는 분들 보면, 주로 1년생 작물 위주로 많이 심는데 그런 방식도 더 변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우리의 먹거리가 대부분 1년생에 집중되어 있는데, 계속 이렇게 농사짓기 어려운 방식으로 기후가 변하면 먹을게 점점 사라질거잖아요. 

유이 : 생협을 통해서 유기농 농산물을 언제든 구하기가 더 쉬워져서 감각이 잘 안되는 부분도 있죠. 우리가 멀어도 여기까지 와서 농사를 짓는 건 이렇게 자연에서 뭔가를 채취할 수 있는 환경을 찾는 게 어려워서 인것도 있잖아요. 소규모 농사를 누구라도 지을 수 있으면 좋을텐데, 모두가 그럴 수 있는 건 아니니 가장 지속가능한 방식은 소농이 생산하는 꾸러미 정도이지 않을까 생각이 들어요. 거기서 그때 나는 걸 이것저것 요구하지 않고 주는 대로 먹는 거죠. 

하밤 : 저도 언니네 텃밭에서 꾸러미를 받는데, 주는 대로 먹는게 진짜 좋더라구요. 계절마다 그때 나는 걸 보내주시는데, 시중에서는 볼 수 없는 작은 사이즈 채소를 보내줘도 그러려니 하고 저는 먹거든요. 그게 농사짓는 사람들이 무리하지 않을 수 있게 만드는 방식이죠. 

유이 : 저는 그런 생각도 했어요. 올해 야생동물도 많이 왔고, 기후도 안좋아서 농사도 잘 안됐잖아요. 기후위기로 인해 다가올 미래를 미리 경험한 아닐까? 쿠바가 예전에 경제위기 겪으면서 유기농이 엄청 발달 했었는데, 그런것처럼 우리도 위기를 지금부터 겪으면서 미리미리 대비를 해야하는 것 아닐까 싶어요. 이렇게 풀먹는 연습도 해놓고…

하밤 : 일종의 적응 연습이네요. 농사나 입맛 뿐만 아니라 정신력도 미리 적응해야 할 것 같아요.(웃음)

지원 : 맞아. 멘탈! 중요해요. 그래야 흔들리지 않으니까요. 

하밤 : 전 올해 흔들릴 뻔 했어요. 이렇게 농사지어서 먹고 살 수 있나 하고.

유이 : 몸이 힘들면 마음도 같이 힘들죠. 

하밤 : 7월 내내 비가 계속 왔잖아요. 비오니까 안좋은 무릎이 계속 아픈데, 일할 때 너무 덥고 지치니 자신이 없어지더라고요. 과연 농사로 먹고 살 수 있을까? 이게 대안이 맞을까? 지역에서 농사짓는 친구들이랑 통화 하면서 이 시대에 농사를 업으로 하면서 돈을 번다는 건 뭐랄까, 답이 없어보였어요. 

유이 : 농사를 이제 전업농이 아니라 놀이처럼 텃밭으로 조그맣게 하는 개념으로 바꿔야 하지 않을까 생각이 들어요. 

지원 : 맞아요. 전업농의 구조를 바꿔야죠. 지금처럼 계속 가는 건 농부를 착취하는 행위잖아요. 정원이나 텃밭처럼 도시사람들도 조금이라도 농사를 지으면서 기본소득이나 농민소득 같은 걸로 전업 농부의 생존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농업의 구조가 변화해야죠. 

유이 : 사실 오래전부터 농부들이 농사지어서 빚잔치 한다는 말은 있었잖아요. 요새는 기후위기로 한번에 망하는 경우가 더 많아지니까, 더 지속가능하지 않죠. 

하밤 : 올해 폭우 때문에 시설농가들이 물에 잠겨서 피해를 많이 봤잖아요. 그런데 막상 지역에 정착해서 농사 지으려는 사람들에게는 시설이 제일 쉬운 선택지라고 하더라고요. 안정적인 수입이 바로 나오니까요. 기후변화 때문에 시설을 할 수 밖에 없는데, 또 피해도 많이 보고. 악순환인 것 같아요.
*시설농업 : 통제된 시설 안에서 빛, 온도, 습도 등의 재배 환경을 인위적으로 조성하여 연중 내내 농산물을 생산하는 농업.

지원 : 어쨌거나 전 이번 여름에 온갖 재난 소식을 보면서 더이상 국가는 나를 지켜주지 않는구나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기후위기에 적응해서 살아남으려면 커뮤니티가 진짜 중요하다는 생각도 들고요. 풀 채취해서 가공해서 먹는 것도 사실 혼자서는 잘 안되잖아요. 

하밤 : 옛날에 풀 공부할때는 이런 풀떼기까지 내가 굳이 먹어야 하나, 생각했었는데. 이제 정말 먹어야 할때가 왔나 봐요. 

유이 : 기근의 삶으로 먼저 들어가는 거죠. 일종의 푸드 다이어트?

하밤 : 묵나물의 세계로 들어가봐야겠어요. 

지원 : 나물의 세계에 집중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나물은 진짜 잘나니까.

하밤 : 새로운 날씨 패턴에 맞춰서 농사짓는 법도 달라져야 할 것 같은데, 그런 경험치를 쌓아서 새로운 방식을 개발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도 들어요. 막연한 상상이지만.

날씨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풀 채취, 묵나물, 농업생산의 구조, 기후위기에 적응하는 삶까지. 짧은 시간 나눈 이야기라고는 믿기지 않을만큼 다양한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다가오는 기후위기에 맞추어 삶의 방식을 바꾸어 나가고자 노력하는 도시농부들의 이야기. 결론이 묵나물을 잘 해먹자! 인것 같아 웃프지만, 새로운 기후의 패턴에 맞추어 삶의 패턴도 바뀌어야 하는 건 명확한 것 같습니다. 여러 수난 속에서도 우리, 멘탈을 잘 부여잡고 잘 살아보아요! 🤗

인터뷰 정리 : 이다예 기후에너지팀


‘그린 파트너스’에서는 녹색연합의 가치에 동의하며 다양한 방식으로 협력하고 있는 분들을 인터뷰하여 이야기를 전합니다.